아이다 레퍼토리 마지막 시즌 한국 막공으로 아이다를 자첫한… 미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전세계 라스트 막공으로 자첫을 하고 거하게 치인…

이 사람은 머리를 풀고 귀곡성을 지르며 하루종일 A Step to Far와 Written in the Stars를 반복재생하며 존재하지 않는 Enchantment Passing Through 음원을 찾아 유튜브를 헤매고 다니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레퍼토리 총막으로 취향극을 자첫한 귀신은 때깔이 고울까요… 하 맛만 보고 죽어서 아귀 될 거 같은데ㅜㅜㅜㅜ
때는 7월이었습니다. 갑자기 트친님이 아이다를 영업하기 시작합니다. 탐라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다가 있습니다.
사실 그때 알았어야 했어요. 이 극은 내 멱살을 잡을 것이다… 이 극은 내 취향일 것이다… 왜냐하면 저는 아이다를 부르짖는 사랑하는 트친님이 쓰시는 글을 사랑하거든요… 네 그때 알았어야 했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분께서 좋아하시는 작품이 내 취향이 아닐 리가 없다…
그러나 7월에는 본진이 연극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대극장은 비싸요… 감히 누추한 제가 귀한 블퀘에 가도 되는 건지… 그렇게 고민하다 막공주가 왔고 본진이 하는 극을 보다가 막공날이 왔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도 망설이고 있었어요. 아이다면 시카고급이니까… 곧 돌아오겠지. 돈 있을 때 보면 되지.
그러나 그렇게 안일한 마음으로 표를 잡지 않았던 저는!!! …아이다의 이번 시즌이 이번 레퍼토리 마지막이라는 중대 소식을 벼락처럼 처맞게 됩니다. 아니 그렇다면… 정말 다시는 오지 않을 극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이렇게 앉아서 놓쳐서는 안 된다!!!!
저는 표가 없지만 일단 비루한 몸뚱이를 주섬주섬 주워 블퀘로 출발합니다. 다행히 블퀘에서 트위터를 무한 새고하며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3층 1열 정중앙을 얻습니다. 네, 총막공이에요. 세미막은 양수에 실패했거든요. 레!퍼!토!리! 총막공입니다… 녜… 시발… 이렇게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저의 아이다 자첫이자 강제 막공… 이 시작됩니다.

캐스트는 김수하 최재림 민경아 박성환.
메렙이 원캐인 게… 정말 대단한 부분… 미친 거 아닌지… 어케 메렙을 원캐로 하셨대ㅜㅜ
블퀘 3층 1열 시야 생각보다 좋아요. 생각보다 배우들이 덜 면봉이고요. 물론 여기서 우리는 이 후기를 쓰는 사람의 마지막 대극장 3층 관람은 국립극장 해오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해오름 3층에 비하면 어떤 극장이든 선녀가 아니겠어요… 암튼 배우들도 잘 보이고 바닥 조명도 잘 보여서 좋았습니다. 자리에 앉자 디즈니 블루 배경에 커다랗게 눈이 박혀 있습니다. 디즈니 덕후는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디즈니 블루와 디즈니 성을 보면서 가슴 두근거렸던 사람의 자동반사입니다. 하 이 시점에서 이미 저는 사랑에 빠질 준비가 끝났다고요… 입덕부정이 시작됩니다.
오버츄어가 들립니다. 네 그렇죠. 대극장 뮤지컬에는 오버츄어라는 게 있어요. 중소극장 연극을 보던 사람은 그만 아연해집니다. 하? 이렇게 사람을 끌어들여? 이렇게 단번에? 준비할 시간도 안 주고 일단 냅다 멱살 잡고 극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야? 음악이 온몸을 채우고 제 심장으로 흘러들어오더니 그대로 저를 무대에 메다꽂습니다. 아니 분명 낮공 노래를 문 너머에서 귀동냥으로 들을 때는 절대 이런 노래가 아니었는데…? 여러분 아이다 노래 맛집이에요. 디즈니인데 당연하겠지만! 하지만 나도 몰랐지! 저 공연 보기 전에 일라보렛을 들었거든요 근데 별로 재미없어서 듣다가 껐어요… 하 산호님 왜 그랬니 진짜…
암튼 오버추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저는 흩어진 정신을 주섬주섬 주워 스토리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트친님이 그랬어요. 이집트 버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고. 롬앤쥴이라고 생각하라고. 예스. 대충 파악은 끝났습니다. 저는 이미 끝내주는 롬앤쥴을 봤죠. NT Live 롬앤쥴이요… 그리고 저는 원래 롬앤쥴을 좋아합니다… 네 그 처절한 애들의 사랑이 너무 좋아요…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그 에너지 넘치는 사랑이 너무 좋아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수 있는 십대만의 특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행동력, 그 무모함… 십대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소년소녀만이 가질 수 있는, 생의 모든 에너지를 현재에 가져다 쓰고 아무 것도 아끼지 않는. 하 그 때의 벅찬 사랑의 감정이 되돌아오면서 아이다가 더 기대되기 시작합니다. 트친님은 분명히 스토리가 어느 정도 유치하니 감안하고 보라고 하신 말씀일 텐데… 암튼 무대가 열립니다. 박물관이에요. 뭔가 거대한 연록빛 상자가 있고요. 거대한 모자와 화려한 망토를 걸친 군주도 있고요. 나무로 만든 활을 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흰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남자와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유물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때 유리관 속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군주가 걸어나옵니다. 시간이 멈추고, 암네리스가 노래를 시작해요. Every Story is a Love Story.
이 세상의 모든 얘기
소설이나 전설이나
운명적인 실화거나 동화 속 이야기나
수천 년을 전해오던 오래된 이야기나
방금 전에 일어났던 새로운 이야기나
아름답고 기쁜 얘기
잔인하고 슬픈 얘기
수천 명이 나오거나
한 명만 나오는 얘기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 모든 얘기
인간의 운명과 같은 애절한 사랑 얘기
하. 모든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래요.
그렇죠.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 누구를 사랑해서, 혹은 누군가 누구를 사랑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여기서 저는 패배를 선언합니다.
하 끝났어… 사랑 얘기 한다잖아요… 모든 이야기는 사랑 얘기라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꽉 닫힌 사랑 이야기 하겠다는 거 아냐… 돌아가는 사랑 이야기… 시공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 좀 전에 박물관에서 남녀한테 스포트 라이트 비춰 줬잖아요. 그니까 걔네가 지금 환생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시 만나서 사랑한다는 거겠지? 쟤네는 운명이라는 거겠지? 시공을 초월한 운명… 시공을 초월한 사랑… 그 어떤 조건에서도 결국 서로를 찾아내고 마는 사랑… 하 너무 좋아요… 사랑해요… 이 사람의 웹소 취향은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몇십 번의 생을 돌고 도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최근에 감명 깊게 본 드라마는 상견니고요… 당연히… 도입부부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하…
그렇게 암네리스가 배경지식을 설명해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활을 든 전사들이 뛰어듭니다. 호루스의 눈이 그려진 배가 나타나더니, 붉은 옷을 입고 복근을 드러낸 남자가 뛰쳐나와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거칠 것 없는 남자 주인공, 라다메스의 등장입니다. Fortune Favors the Brave.
운은 용기 있는 자의 것.
네. 롬앤쥴의 세상의 왕들과 조응되는 노래죠. 영광은 우리의 것. 신납니다. 마구 내달리죠. 손에 넣고 싶은 것을 단 한 번도 거절당해본 적이 없는, 부모도 능력도 노력도 다 갖춘 남자만이 부를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찬가. 세상이 가장 좋은 것만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한껏 오만하고, 자신의 능력이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보다 뛰어나니 자기효능감이 넘치고, 돈이든 모험이든 미래든 차고 넘치도록 가지고 있으니 나눠주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죠.
난 모든 일 다 이뤘고 내 앞길엔 거칠 것 없네
광활한 나의 꿈이 땅끝까지 펼쳐지리
저 태양도 저 파도도 저 하늘의 별들까지
다 우리가 지배하네
영광 우리의 것.
라다메스는 신났어요. 한 번도 패배해본 적 없는 눈부신 젊은 장군님.
영광과 젊음과 행운을 모두 움켜쥔, 신의 사랑을 받으며 삶의 가장 좋은 것만을 누리는, 치기어린 청년. 여기서 저는 직감합니다. 쟤는… 어리다. 14살? 아무리 많게 봐도 16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음… 네 완벽한 로미오의 조건이네요… 자 줄리엣만 만나면 돼 이제…
트친님이 말씀하셨어요.
최라다는 쾌남!!!! 쾌남이다!!!!!! 그리고 저는 최라다 이후 유튭에서 어떤 라다를 찾아보아도 밋밋하게 느껴지는 저주에 걸립니다. 아니 다른 애들은 왜 다… 저런 패기가 없어…?
다정하고 멋지고 어른스럽고 당당한 장군들이 넘쳐나지만, 최라다만큼 치기와 오만으로 가득한 쾌남은 없어요… 역시 미성년의 사랑은 치기!오만!파멸이다!
하… 초딩미 가득한 라다… 내가 사랑한다… 우연이란 없어 운명도 없는 거야
내가 살아가는 길 내 자신이 만드는 거야
하… 네 전 이게 세상의 왕들이랑 같은 노래인 줄 알았어요. 라다메스가 아이다를 만나기 전까지요… 자 원하는 걸 모두 이룬 청년이 있습니다. 태양도 파도도 별들도 다 자기가 지배한다고 믿어요. 우연은 없고 운명도 없고 나는 능력이 좋으니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 다시 말할게요 저는 오만한 애새끼(가 사랑 앞에서 철저히 무력해지는 것)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ㅜㅠㅠㅠ 너의 오만? 그것은 이제 곧 깨어질 것이다. 너의 마지막 영광의 순간을 즐기도록 해라.
극은 말하죠.
너의 운명은 저 별에 쓰여 있으니 네가 바꾸지 못할 것이다.
너는 별의 지배를 받는 한갓 인간에 지나지 않으니 네가 살아가는 길은 별이 예비한 것이고 너의 미래는 저 하늘의 별이 되는 것이다. 너의 자유는 더 이상 없겠지만 너는 너 스스로 네가 살아가는 길을 없애고 네 자유를 포기할지니.
별. 우연. 운명. 모두 저 노래에서 말해버렸죠.
심지어 “모든 일 다 이뤘고 앞길엔 거칠 것 없네”라는 과거형 문장까지.
이미 모든 일을 다 이뤘어요. 이제 더 할 일이 없어요. 하지만 라다메스를 위해 예비된 별의 길은 이제 막 시작합니다.
극을 처음 보고 있으니 저런 디테일까지 잡아내진 못했죠. 그냥 신나게 내달리는 넘버가 나오니 같이 신납니다. 세상의 왕들을 생각하며 내적 어깨춤을 추고 있는데.
The Past is Another Land.
습관처럼 영광을 좇는 라다메스 장군께서 자존심만 남은 누비아의 공주님을 노예로 잡아왔습니다. 자존심 세고, 고집 세고, 용기 있고, 어느 정도의 무력에 항해력까지 갖춘 공주님.
사담인데, 여기서 조금 슬펐어요. 강대국 이집트의 유일한 후계자인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의 약혼녀로서 아름답게 치장하고 약혼자를 기쁘게 하는 것만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약소국 누비아의 후계자인 아이다는 항해술에 방어술까지 갖추고 있어요. 왕이 직접 공주에게 항해술을 가르쳤다고 하고요. 결국 나라가 커지고 강대해질수록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여성들을 더 옭아매게 되는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아무튼, 누비아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을 따라온 누비아인들을 모두 잡히게 했다고 자책하는 아이다 공주님. 공주님께선 병사 하나를 인질로 잡고 칼을 휘두르며 협상을 시도하십니다. 협상은 실패로 끝나지만, 라다메스에게는 그 순간이 모든 게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일명 “나한테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후후. 클리셰고… 근데 최라다가 너무 애기여가지고요… 90년대 순정만화 재질입니다. 진짜 딱 그거임 나한테 반항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후 짜릿. 자 너는 이제 네 인생을 말아먹을 것이다. 일주일 안에. 암튼 이 쾌남 애기 왕자님은 아이다에게 확 끌립니다. 그래서 아이다를 차마 힘든 노동환경으로 내몰 수가 없었어요. 그리하여 암네리스 공주에게 아이다를 시녀로 보내는데… 최라다 애기미가 뿜뿜… 솔직히 누가 봐도 너 지금 쟤한테 끌렸다. 너 지금 쟤한테 마음 있다. 누가 봐도 너 지금 사랑에 눈이 멀어 있다… 아직 사랑을 시작도 하기 전인데도. 갑자기 분위기 반전.
조세르가 등장합니다. 라다 아빠.
근데 조세르랑 조세르 앙상블들이 입은 옷은 아무리 봐도 이집트 옷이 아닌 것 같은… 무슨 사제복 같은데… 뭐 예쁘니까 됐고요. Another Pyramid. 그 음… 여기 좀 힘들었어요. 바닥 조명이… 벽돌을 형상화한 건가? 그물을 형상화한 건가? 되게 눈 아프고… 환공포증 있는 사람 기겁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런가 목 뒤 털이 곤두선 상태로 관람합니다.
조세르 나올 때마다 바닥 조명 너무 힘들어요ㅜㅜ 얘 빌런이라서 일부러 관객 힘들게 만드는 조명 까는 건지… 조명 좀 징그러워요. 암튼 이 극의 빌런이 등장합니다. 별 거 없는 빌런. 그치만 넘버는 좋습니다. 귀에 쫙쫙 달라붙어요. 라다메스는 깨닫습니다.
암네리스 공주와의 9년 약혼이 결혼으로 이어질 때가 왔다. 나는 새로운 파라오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과연 그걸 원하는가? 난 당장 내일이라도 배를 타고 영광을 좇으러 떠나고 싶은데?
How I Know You
이 와중에 라다메스의 심복 노예인 누비아인 메렙이 아이다 공주를 발견합니다. 메렙은 아이다를 알아봅니다. 아이다가 신분을 밝혀 누비아인 노예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청합니다. 아이다의 내적 갈등이 시작됩니다.
공주님은 누비아인 노예들의 희망이에요 vs 아니 이제 나도 노예일 뿐이야.
줄리엣의 유모가 여기서는 라다메스의 심복 메렙으로 나타납니다. 죽을 뻔한 저를 라다메스 장군님께서 구해 주셨어요! 자, 사랑에 빠질 조건이 완성되었습니다.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vs 라다메스 장군도 알고 보면 따뜻하고 인정 있는 사람이네. 와 클리셰다. 그치만 좋아요! 연극도 아니고 뮤지컬은 클리셰 보는 맛이지!
My Strongest Suit
아이다가 고생을 안 하기를 바란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약혼녀 암네리스의 시녀로 보냅니다. 선물이에요.
메렙이 아이다를 소개하자 암네리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짜증을 냅니다.
“또 시녀냐?”
네 우리의 라다메스 장군님은 상당히 무딘 분입니다. 암네리스가 시녀를 좋아해? 그럼 또 줘야지. 사실 둘이 얼마나 소통이 안 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죠. 서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이후 무도회 씬에서 암네리스는 “다음번 정복 전쟁에는 나도 따라가겠다”고 하고, 라다메스는 “야영을 해야 하고, 벌레가 있다”고 합니다. 암네리스는 새침하게 “안 갈래요”라고 대답하죠. 이 씬은 개그씬이지만 너무 슬픈 장면이에요.
둘은 이미 같은 곳을 보지 못해요. 라다메스가 아이다한테 끌린 게 이해가 되죠… 같이 모험을 떠나 줄 사람이니까. 물론 사랑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사랑이 당신을 잡아먹을 것이다. 아이다 1장 1절.
Enchantment Passing Through
나왔다!!!!!!!!!!! 팜투팜!!!!!!!!!!!!!!!!!
하 발코니씬 다음으로 유명한 발코니씬보다 야한 그 팜투팜!!!!!!!!!! 후 이거 제 최애곡이에요. 근데 박제가 없어요… 단 하나도 없어요…ㅠㅠㅠㅠㅠㅠㅠ 신시야
신시 듣고있니? 인챈
인챈 줘 신시야 농담 아니야 인챈을 오만원에 팔아도 살게 인챈줘… 하 신시 하드 해킹하고 싶다.
이 노래가 진짜 대단하거든요… 노래 제목이 “스쳐 지나가는 매혹”이잖아요. 사실 모든 사랑의 두근거림이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한 번의 손짓, 한 번의 눈길을 교환하는 순간이에요. 상대에게 확 끌린 순간. 끌림의 이유도 모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툭 던진 한마디, 잠깐 본 한순간의 눈빛으로 활활 불이 붙어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쟤한테 왜?
쟤는 금방 잊혀질 사람이야. 내 인생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왜?!
라고 말하는 게 인챈입니다. 박력이… 대단해요. 아이다랑 라다메스가 무대 정중앙에서 만난 뒤 서로 반대편으로, 무대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멀어지면서 듀엣을 하거든요. 라다메스가 무대의 하수 앞쪽으로 나오면서 박력 있게… 롹스피릿을 담아 고음을 시원하게 지릅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방금 만났는데
뒤돌면 금방 잊혀지게 될 여!!!!자!!!! 에게!!!!!! 쾅 하고 발을 구르면서 입고 있는 붉은 치맛자락을 휙 날립니다. 박력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하 이렇게 저는 입덕을 합니다… 이게 박제가 없다니 신시야 진짜 너무한다. 암튼 저는… 아주…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원래 입덕부정기가 가장 맛있는 거라고요… 아이다랑 라다메스가 지금 둘 다 입덕부정기예요. 비포선셋 찍고 있으면서 아닌척함ㅋㅋㅋ “뒤돌면 금방 잊혀지게 될 여자”는 영어로 보면 가사가 두 가지입니다. A woman whom I hardly know at all and should forget
A woman whom I hardly know at all and will forget
조동사 차이 보이시지요 엉엉엉엉
잊어야 할 여자➡️잊을 여자
그러나 둘 다 처절히 실패합니다… Should에서 will로 가는 과정에는 다양한 판단과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라다도 아는 거죠. 이 여자는 위험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뒤도는 순간 잊어야 할 대상에서, 반드시 잊을 대상으로 바뀌는 거죠. 그러나 사랑에서 부정의 말은 뭐다? 반대의 마음을 수반한다. 라다메스는 중얼거립니다. 완전히 홀렸어
내가 얘기한 그 모든 것
그녀는 다 알아 자유를 말하는 여자. 이제 공주와 결혼해서 파라오가 되어 다시는 이집트 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서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네 인생의 주인은 너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라고 말하는 여자. 감히 궁정 노예 앞에서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짜증 낼 줄도 아는 여자.
자유의 달콤함을, 용맹함의 가치를 아는 여자.
사실 왕 자리 따윈 요만큼도 관심이 없고 뛰어다니며 정복 전쟁을 할 마음만 만만했던 라다메스는 그 말을 듣고 깊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자기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문제는 그 선택권으로 하는 일이 고립과 파멸임ㅋ
그것도 교만과 아집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타인을 사랑해서 발생하는 파멸입니다.
눈을 가리고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랑… 하 이걸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요…
선택이요?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선택합니다. 사랑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됩니다. 사랑에 구속된 라다메스는 정말로 자유롭게, 모든 걸 버리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재산, 지위, 명예, 가족까지. “네가 나의 전분데”(Written in the Stars)
라다메스의 사랑은 가히 신화적입니다. 별들은 계속해서 요구합니다. 네가 네 사랑을 위해서 어디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 보자.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놓으렴. 그렇다고 해도 네 사랑만은 남을 테니. 네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 보자. 그래서 라다메스는 정말로 다 버리고 고립되길 자처합니다. 너무 좋죠…
- 네 인생에는 무한한 자유가 있고 넌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 알았어. 무한한 자유로 지금부터 널 사랑하기를 선택해서 너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릴게.
이렇게 자유는 구속이 되고, 눈앞에 펼쳐질 예정이었던 장밋빛 모험과 피의 정복은 감옥으로 수렴되고, 삶은 죽음으로 내달립니다. 기다리고 있는 건 밤의 어둠처럼 검은 파멸뿐.
그럼에도,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16세의 쾌남이란 그런 것입니다. My Strongest Suit(reprise)
암네리스의 공허함과 허무함을 이해하는 아이다. “또 다른 나”를 찾게 될 거라고,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기 위해 자신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암네리스에게 말하는 아이다.
아이다가 하는 말은 늘 한결같아요. 라다메스에게도 암네리스에게도. 너의 본모습을 찾아가라고. 너는 할 수 있다고. 주변에서 기대하는 거 말고, 네가 원하는 걸 하라고. 그래서 라다메스도 암네리스도, 아이다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죠. 신뢰하고 기대요. 자신을 이해해준 첫 번째 사람이니까.
아이다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고.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아이다에게는 정해진 길이 없어요. 아이다는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고 이제 누비아의 공주로 돌아가기는 요원해 보이니까요.
정체성도 혼란스럽고, 누비아인 노예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있으면서, 홀로 남겨진 아버지도 걱정해야 하고, 자기 마음은 부평초처럼 흔들려요. A Step too Far에서 라다메스는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사실 진짜 혼란스러운 건 아이다일 거예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누비아의 공주님은, 누구보다도 산산이 찢긴 마음을 안고 정처 없이 헤매게 됩니다. 아이다는 누비아 백성들에게 힘이 되는 공주님도, 모든 걸 다 버리고 라다메스와 국경에 집을 짓는 필부필녀도 될 수 없으니까.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조언이, 정작 자신은 희망의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이 어둠 속에 내던져진 소녀에게서 나온다는 거 너무 슬프고 짜릿하죠.
Dance of the Robe
그래서 그 소녀는 이제 왕관을 받아들게 됩니다.
네헤브카가 누더기 예복을 가져와서 입혀줍니다.
사실 라다가 아이다한테 빠진 건 너무 잘 이해가 되는데 아이다가 라다한테 빠진 건 어느 시점인지 궁금했거든요. 근데 제 생각엔 여기예요. 놀랍게도…
인챈에서 알 수 있듯이(“방금 만난 그에게”) 아이다도 라다메스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이 있었어요. 그러나 아이다는 라다처럼 모든 것을 던져버리기엔 적국의 공주로서 자존심도 세고,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죠.
그래서 My Strongest Suit에서 라다메스가 아이다를 만나기 위한 구실로 암네리스를 찾아와도 아이다는 구실을 대어 매몰차게 거절해요.
그러나 메렙의 주도로 누비아인 노예들을 만난 순간,
자기에게 거는 그 무거운 기대들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저는 여기서,
아이다가 사랑에 빠지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합니다. 누비아의 백성들을 위해 예복을 입고 투사가 되어달라니.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마치 야생의 새 같은 아이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큰 짐이었던 거죠.
라다메스의 사랑이 자유를 향한 갈망에서 시작되었다면 아이다의 사랑은 책임에 대한 도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사랑이 한 번 시작되면, 그 호랑이가 한 번 내달리기 시작하면, 처음 시작이 어땠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세계가 사랑으로 수렴하고 사랑은 세계를 저버립니다.
Not Me
하 저 이 노래 너무 좋아요
사랑에 대한 찬가이면서 마음에 대한 고백이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복기예요. 아이다와 암네리스가 노래합니다.
난 사랑이 이렇게 좋은 줄
나는 몰랐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나는 몰랐어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서
그 모든 세상 내던질 줄은
나는 몰랐어 하……
볼 때는 좋았지……
2막 가면 이 노래 생각하며 눈물 줄줄 흘리게 될 텐데…
네 이 노래를 듣고 저는 확신했어요 아이다는 Dance of the Robe에서 사랑에 빠지기로, 혹은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이 맞다…
그러니 이제 저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토록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려 했던 사랑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이렇게 좋은 것이었다니. 나는 몰랐어.
아름답죠. 벅차고요. 그리고 슬퍼요…ㅠㅠㅠㅠ 한편 해맑은 우리의 장군님이 외칩니다.
“별 거 아냐! 내 전재산이야!^^”
전재산을 털어 누비아인 노예들을 구휼하고, 마치 “마트 세 군데 돌아서 허니버터칩 사왔어!^^”처럼 말하는 해맑은 패기… 하 애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메렙ㅠㅠㅠㅠ 메렙아ㅜㅜㅜㅜ Not Me 내내 절규하는 메렙…
메렙이 계획했던 것들이 모두 틀어질 때,
자신의 주인의 결혼도, 자신의 공주님의 결정도,
그 불확실하고 연약한 마음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모두 뒤틀리고 엉망이 됩니다. 메렙은 약은 사람이에요. 상황을 보면서 움직일 줄 알고, 눈치를 볼 줄 알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적절한 수단을 일으킬 줄 알죠. 모두 생존 스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선 이집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메렙이 한평생 쌓아 온 것이 그놈의 마음!!!! 하나 때문에 개판이 납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설득도 불가능하고, 되돌리는 것도 불가하죠.
마음이니까.
라다메스의 마음에 의지해 자신의 생존을 도모했던 메렙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겠죠.
Elaborate Lives 나왔다!!!!!!!!!!! 발코니씬!!!!!!!!!!!!!!!!!!! 뮤지컬 역사상 가장 섹시한 고백!!!!!!!!
와 저 3층인데도 숨 참고 봤어요….. 최라다 몸 좋더라…
이 시대의 참 남주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두 무릎을 다 꿇고… 사랑을 갈구해요….
그렇다 사랑을 청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성 상 드립니다.
여기 한국 연출이 대단해요. 무대 양 끝에서 시작해서, 아이다가 망설이는 사이 라다메스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무릎을 꿇고 사랑을 청하며 애무를 합니다… 와 진짜 난 이 장면 전까지 내 심장이 안 뛰고 있었는 줄 알았어… 무대 장악력이 와…
우리의 복잡한 인생들
야망들로 가득해
그 속에서 우리들의 사랑
어떻게 살아있을까
해석: 널 위해 내 야망을 다 버릴게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
그런 삶은 난 싫어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
그런 사랑 난 싫어
너와 있고 싶을 뿐
평화롭게 영원히
해석: 난 이제 모험도 전쟁도 바라지 않아 놀랍게도 난 평화를 원해 너와 단 둘이 영원히 평화롭기를 누구도 우리 둘만의 세계를 파훼하지 않기를 지금 나의 이 고백
부담되겠지만
완벽한 때가 오길
기다릴 수 없어
해석: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하지만 내가 널 사랑해 부담되겠지만~ 하면서 무릎 꿇은 자세에서 천천히 일어서면서 아이다 아이다의 양손을 자기 양손으로 하나씩 잡는데 정말… 기절… 서윗… 열정… 불타는… 정열… 하 내 눈으로 무대에서 한 번이라도 이걸 봐서 너무 다행이다ㅜㅜㅜㅜㅜㅜ
그리고 열정적인 첫날밤이… 시작됩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요… 저는 그만 여기서 정신을 잃고
The Gods Love Nubia 그러나 공주님에게는 아직 시련이 부족합니다.
조국과 사랑 중에 뭘 고를래?
너의 아름다운 조국이 너를 부르는데?
후 기력 딸린다
2막은 좀 이따… 쓰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이틀 걸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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