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 레퍼토리 마지막 시즌 한국 막공으로 아이다를 자첫한… 미친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전세계 라스트 막공으로 자첫을 하고 거하게 치인…


이 사람은 머리를 풀고 귀곡성을 지르며 하루종일 A Step to Far와 Written in the Stars를 반복재생하며 존재하지 않는 Enchantment Passing Through 음원을 찾아 유튜브를 헤매고 다니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레퍼토리 총막으로 취향극을 자첫한 귀신은 때깔이 고울까요… 하 맛만 보고 죽어서 아귀 될 거 같은데ㅜㅜㅜㅜ

때는 7월이었습니다. 갑자기 트친님이 아이다를 영업하기 시작합니다. 탐라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다가 있습니다.

사실 그때 알았어야 했어요. 이 극은 내 멱살을 잡을 것이다… 이 극은 내 취향일 것이다… 왜냐하면 저는 아이다를 부르짖는 사랑하는 트친님이 쓰시는 글을 사랑하거든요… 네 그때 알았어야 했죠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분께서 좋아하시는 작품이 내 취향이 아닐 리가 없다…

그러나 7월에는 본진이 연극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대극장은 비싸요… 감히 누추한 제가 귀한 블퀘에 가도 되는 건지… 그렇게 고민하다 막공주가 왔고 본진이 하는 극을 보다가 막공날이 왔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도 망설이고 있었어요. 아이다면 시카고급이니까… 곧 돌아오겠지. 돈 있을 때 보면 되지.

그러나 그렇게 안일한 마음으로 표를 잡지 않았던 저는!!! …아이다의 이번 시즌이 이번 레퍼토리 마지막이라는 중대 소식을 벼락처럼 처맞게 됩니다. 아니 그렇다면… 정말 다시는 오지 않을 극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이렇게 앉아서 놓쳐서는 안 된다!!!!

저는 표가 없지만 일단 비루한 몸뚱이를 주섬주섬 주워 블퀘로 출발합니다. 다행히 블퀘에서 트위터를 무한 새고하며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3층 1열 정중앙을 얻습니다. 네, 총막공이에요. 세미막은 양수에 실패했거든요. 레!퍼!토!리! 총막공입니다… 녜… 시발… 이렇게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저의 아이다 자첫이자 강제 막공… 이 시작됩니다.

캐스트는 김수하 최재림 민경아 박성환.

메렙이 원캐인 게… 정말 대단한 부분… 미친 거 아닌지… 어케 메렙을 원캐로 하셨대ㅜㅜ

블퀘 3층 1열 시야 생각보다 좋아요. 생각보다 배우들이 덜 면봉이고요. 물론 여기서 우리는 이 후기를 쓰는 사람의 마지막 대극장 3층 관람은 국립극장 해오름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해오름 3층에 비하면 어떤 극장이든 선녀가 아니겠어요… 암튼 배우들도 잘 보이고 바닥 조명도 잘 보여서 좋았습니다. 자리에 앉자 디즈니 블루 배경에 커다랗게 눈이 박혀 있습니다. 디즈니 덕후는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디즈니 블루와 디즈니 성을 보면서 가슴 두근거렸던 사람의 자동반사입니다. 하 이 시점에서 이미 저는 사랑에 빠질 준비가 끝났다고요… 입덕부정이 시작됩니다.

오버츄어가 들립니다. 네 그렇죠. 대극장 뮤지컬에는 오버츄어라는 게 있어요. 중소극장 연극을 보던 사람은 그만 아연해집니다. 하? 이렇게 사람을 끌어들여? 이렇게 단번에? 준비할 시간도 안 주고 일단 냅다 멱살 잡고 극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야? 음악이 온몸을 채우고 제 심장으로 흘러들어오더니 그대로 저를 무대에 메다꽂습니다. 아니 분명 낮공 노래를 문 너머에서 귀동냥으로 들을 때는 절대 이런 노래가 아니었는데…? 여러분 아이다 노래 맛집이에요. 디즈니인데 당연하겠지만! 하지만 나도 몰랐지! 저 공연 보기 전에 일라보렛을 들었거든요 근데 별로 재미없어서 듣다가 껐어요… 하 산호님 왜 그랬니 진짜…

암튼 오버추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저는 흩어진 정신을 주섬주섬 주워 스토리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트친님이 그랬어요. 이집트 버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라고. 롬앤쥴이라고 생각하라고. 예스. 대충 파악은 끝났습니다. 저는 이미 끝내주는 롬앤쥴을 봤죠. NT Live 롬앤쥴이요… 그리고 저는 원래 롬앤쥴을 좋아합니다… 네 그 처절한 애들의 사랑이 너무 좋아요…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그 에너지 넘치는 사랑이 너무 좋아요…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던질 수 있는 십대만의 특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행동력, 그 무모함… 십대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소년소녀만이 가질 수 있는, 생의 모든 에너지를 현재에 가져다 쓰고 아무 것도 아끼지 않는. 하 그 때의 벅찬 사랑의 감정이 되돌아오면서 아이다가 더 기대되기 시작합니다. 트친님은 분명히 스토리가 어느 정도 유치하니 감안하고 보라고 하신 말씀일 텐데… 암튼 무대가 열립니다. 박물관이에요. 뭔가 거대한 연록빛 상자가 있고요. 거대한 모자와 화려한 망토를 걸친 군주도 있고요. 나무로 만든 활을 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리고 흰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남자와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유물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때 유리관 속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군주가 걸어나옵니다. 시간이 멈추고, 암네리스가 노래를 시작해요. Every Story is a Love Story.

이 세상의 모든 얘기
소설이나 전설이나
운명적인 실화거나 동화 속 이야기나
수천 년을 전해오던 오래된 이야기나
방금 전에 일어났던 새로운 이야기나
아름답고 기쁜 얘기
잔인하고 슬픈 얘기
수천 명이 나오거나
한 명만 나오는 얘기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세상 모든 얘기
인간의 운명과 같은 애절한 사랑 얘기

하. 모든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래요.
그렇죠.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 누구를 사랑해서, 혹은 누군가 누구를 사랑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여기서 저는 패배를 선언합니다.

하 끝났어… 사랑 얘기 한다잖아요… 모든 이야기는 사랑 얘기라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꽉 닫힌 사랑 이야기 하겠다는 거 아냐… 돌아가는 사랑 이야기… 시공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 좀 전에 박물관에서 남녀한테 스포트 라이트 비춰 줬잖아요. 그니까 걔네가 지금 환생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시 만나서 사랑한다는 거겠지? 쟤네는 운명이라는 거겠지? 시공을 초월한 운명… 시공을 초월한 사랑… 그 어떤 조건에서도 결국 서로를 찾아내고 마는 사랑… 하 너무 좋아요… 사랑해요… 이 사람의 웹소 취향은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몇십 번의 생을 돌고 도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최근에 감명 깊게 본 드라마는 상견니고요… 당연히… 도입부부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하…

그렇게 암네리스가 배경지식을 설명해주는가 싶더니 갑자기 활을 든 전사들이 뛰어듭니다. 호루스의 눈이 그려진 배가 나타나더니, 붉은 옷을 입고 복근을 드러낸 남자가 뛰쳐나와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거칠 것 없는 남자 주인공, 라다메스의 등장입니다. Fortune Favors the Brave.

운은 용기 있는 자의 것.
네. 롬앤쥴의 세상의 왕들과 조응되는 노래죠. 영광은 우리의 것. 신납니다. 마구 내달리죠. 손에 넣고 싶은 것을 단 한 번도 거절당해본 적이 없는, 부모도 능력도 노력도 다 갖춘 남자만이 부를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찬가. 세상이 가장 좋은 것만을 내어주었기 때문에 한껏 오만하고, 자신의 능력이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보다 뛰어나니 자기효능감이 넘치고, 돈이든 모험이든 미래든 차고 넘치도록 가지고 있으니 나눠주는 것에도 망설임이 없죠.

난 모든 일 다 이뤘고 내 앞길엔 거칠 것 없네
광활한 나의 꿈이 땅끝까지 펼쳐지리
저 태양도 저 파도도 저 하늘의 별들까지
다 우리가 지배하네
영광 우리의 것.

라다메스는 신났어요. 한 번도 패배해본 적 없는 눈부신 젊은 장군님.

영광과 젊음과 행운을 모두 움켜쥔, 신의 사랑을 받으며 삶의 가장 좋은 것만을 누리는, 치기어린 청년. 여기서 저는 직감합니다. 쟤는… 어리다. 14살? 아무리 많게 봐도 16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음… 네 완벽한 로미오의 조건이네요… 자 줄리엣만 만나면 돼 이제…

트친님이 말씀하셨어요.
최라다는 쾌남!!!! 쾌남이다!!!!!! 그리고 저는 최라다 이후 유튭에서 어떤 라다를 찾아보아도 밋밋하게 느껴지는 저주에 걸립니다. 아니 다른 애들은 왜 다… 저런 패기가 없어…?
다정하고 멋지고 어른스럽고 당당한 장군들이 넘쳐나지만, 최라다만큼 치기와 오만으로 가득한 쾌남은 없어요… 역시 미성년의 사랑은 치기!오만!파멸이다!
하… 초딩미 가득한 라다… 내가 사랑한다… 우연이란 없어 운명도 없는 거야
내가 살아가는 길 내 자신이 만드는 거야

하… 네 전 이게 세상의 왕들이랑 같은 노래인 줄 알았어요. 라다메스가 아이다를 만나기 전까지요… 자 원하는 걸 모두 이룬 청년이 있습니다. 태양도 파도도 별들도 다 자기가 지배한다고 믿어요. 우연은 없고 운명도 없고 나는 능력이 좋으니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 다시 말할게요 저는 오만한 애새끼(가 사랑 앞에서 철저히 무력해지는 것)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ㅜㅠㅠㅠ 너의 오만? 그것은 이제 곧 깨어질 것이다. 너의 마지막 영광의 순간을 즐기도록 해라.

극은 말하죠.

너의 운명은 저 별에 쓰여 있으니 네가 바꾸지 못할 것이다.
너는 별의 지배를 받는 한갓 인간에 지나지 않으니 네가 살아가는 길은 별이 예비한 것이고 너의 미래는 저 하늘의 별이 되는 것이다. 너의 자유는 더 이상 없겠지만 너는 너 스스로 네가 살아가는 길을 없애고 네 자유를 포기할지니.

별. 우연. 운명. 모두 저 노래에서 말해버렸죠.
심지어 “모든 일 다 이뤘고 앞길엔 거칠 것 없네”라는 과거형 문장까지.
이미 모든 일을 다 이뤘어요. 이제 더 할 일이 없어요. 하지만 라다메스를 위해 예비된 별의 길은 이제 막 시작합니다.

극을 처음 보고 있으니 저런 디테일까지 잡아내진 못했죠. 그냥 신나게 내달리는 넘버가 나오니 같이 신납니다. 세상의 왕들을 생각하며 내적 어깨춤을 추고 있는데.

The Past is Another Land.

습관처럼 영광을 좇는 라다메스 장군께서 자존심만 남은 누비아의 공주님을 노예로 잡아왔습니다. 자존심 세고, 고집 세고, 용기 있고, 어느 정도의 무력에 항해력까지 갖춘 공주님.

사담인데, 여기서 조금 슬펐어요. 강대국 이집트의 유일한 후계자인 암네리스는 라다메스의 약혼녀로서 아름답게 치장하고 약혼자를 기쁘게 하는 것만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약소국 누비아의 후계자인 아이다는 항해술에 방어술까지 갖추고 있어요. 왕이 직접 공주에게 항해술을 가르쳤다고 하고요. 결국 나라가 커지고 강대해질수록 남성중심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여성들을 더 옭아매게 되는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아무튼, 누비아를 그리워하며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을 따라온 누비아인들을 모두 잡히게 했다고 자책하는 아이다 공주님. 공주님께선 병사 하나를 인질로 잡고 칼을 휘두르며 협상을 시도하십니다. 협상은 실패로 끝나지만, 라다메스에게는 그 순간이 모든 게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일명 “나한테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후후. 클리셰고… 근데 최라다가 너무 애기여가지고요… 90년대 순정만화 재질입니다. 진짜 딱 그거임 나한테 반항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후 짜릿. 자 너는 이제 네 인생을 말아먹을 것이다. 일주일 안에. 암튼 이 쾌남 애기 왕자님은 아이다에게 확 끌립니다. 그래서 아이다를 차마 힘든 노동환경으로 내몰 수가 없었어요. 그리하여 암네리스 공주에게 아이다를 시녀로 보내는데… 최라다 애기미가 뿜뿜… 솔직히 누가 봐도 너 지금 쟤한테 끌렸다. 너 지금 쟤한테 마음 있다. 누가 봐도 너 지금 사랑에 눈이 멀어 있다… 아직 사랑을 시작도 하기 전인데도. 갑자기 분위기 반전.
조세르가 등장합니다. 라다 아빠.
근데 조세르랑 조세르 앙상블들이 입은 옷은 아무리 봐도 이집트 옷이 아닌 것 같은… 무슨 사제복 같은데… 뭐 예쁘니까 됐고요. Another Pyramid. 그 음… 여기 좀 힘들었어요. 바닥 조명이… 벽돌을 형상화한 건가? 그물을 형상화한 건가? 되게 눈 아프고… 환공포증 있는 사람 기겁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런가 목 뒤 털이 곤두선 상태로 관람합니다.

조세르 나올 때마다 바닥 조명 너무 힘들어요ㅜㅜ 얘 빌런이라서 일부러 관객 힘들게 만드는 조명 까는 건지… 조명 좀 징그러워요. 암튼 이 극의 빌런이 등장합니다. 별 거 없는 빌런. 그치만 넘버는 좋습니다. 귀에 쫙쫙 달라붙어요. 라다메스는 깨닫습니다.

암네리스 공주와의 9년 약혼이 결혼으로 이어질 때가 왔다. 나는 새로운 파라오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과연 그걸 원하는가? 난 당장 내일이라도 배를 타고 영광을 좇으러 떠나고 싶은데?

How I Know You

이 와중에 라다메스의 심복 노예인 누비아인 메렙이 아이다 공주를 발견합니다. 메렙은 아이다를 알아봅니다. 아이다가 신분을 밝혀 누비아인 노예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청합니다. 아이다의 내적 갈등이 시작됩니다.

공주님은 누비아인 노예들의 희망이에요 vs 아니 이제 나도 노예일 뿐이야.

줄리엣의 유모가 여기서는 라다메스의 심복 메렙으로 나타납니다. 죽을 뻔한 저를 라다메스 장군님께서 구해 주셨어요! 자, 사랑에 빠질 조건이 완성되었습니다.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vs 라다메스 장군도 알고 보면 따뜻하고 인정 있는 사람이네. 와 클리셰다. 그치만 좋아요! 연극도 아니고 뮤지컬은 클리셰 보는 맛이지!

My Strongest Suit

아이다가 고생을 안 하기를 바란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약혼녀 암네리스의 시녀로 보냅니다. 선물이에요.
메렙이 아이다를 소개하자 암네리스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짜증을 냅니다.

“또 시녀냐?”

네 우리의 라다메스 장군님은 상당히 무딘 분입니다. 암네리스가 시녀를 좋아해? 그럼 또 줘야지. 사실 둘이 얼마나 소통이 안 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죠. 서로에게 필요한 게 뭔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이후 무도회 씬에서 암네리스는 “다음번 정복 전쟁에는 나도 따라가겠다”고 하고, 라다메스는 “야영을 해야 하고, 벌레가 있다”고 합니다. 암네리스는 새침하게 “안 갈래요”라고 대답하죠. 이 씬은 개그씬이지만 너무 슬픈 장면이에요.

둘은 이미 같은 곳을 보지 못해요. 라다메스가 아이다한테 끌린 게 이해가 되죠… 같이 모험을 떠나 줄 사람이니까. 물론 사랑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면 사랑이 당신을 잡아먹을 것이다. 아이다 1장 1절.

Enchantment Passing Through

나왔다!!!!!!!!!!! 팜투팜!!!!!!!!!!!!!!!!!
하 발코니씬 다음으로 유명한 발코니씬보다 야한 그 팜투팜!!!!!!!!!! 후 이거 제 최애곡이에요. 근데 박제가 없어요… 단 하나도 없어요…ㅠㅠㅠㅠㅠㅠㅠ 신시야
신시 듣고있니? 인챈
인챈 줘 신시야 농담 아니야 인챈을 오만원에 팔아도 살게 인챈줘… 하 신시 하드 해킹하고 싶다.

이 노래가 진짜 대단하거든요… 노래 제목이 “스쳐 지나가는 매혹”이잖아요. 사실 모든 사랑의 두근거림이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한 번의 손짓, 한 번의 눈길을 교환하는 순간이에요. 상대에게 확 끌린 순간. 끌림의 이유도 모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툭 던진 한마디, 잠깐 본 한순간의 눈빛으로 활활 불이 붙어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쟤한테 왜?
쟤는 금방 잊혀질 사람이야. 내 인생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왜?!

라고 말하는 게 인챈입니다. 박력이… 대단해요. 아이다랑 라다메스가 무대 정중앙에서 만난 뒤 서로 반대편으로, 무대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며 멀어지면서 듀엣을 하거든요. 라다메스가 무대의 하수 앞쪽으로 나오면서 박력 있게… 롹스피릿을 담아 고음을 시원하게 지릅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방금 만났는데
뒤돌면 금방 잊혀지게 될 여!!!!자!!!! 에게!!!!!! 쾅 하고 발을 구르면서 입고 있는 붉은 치맛자락을 휙 날립니다. 박력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하 이렇게 저는 입덕을 합니다… 이게 박제가 없다니 신시야 진짜 너무한다. 암튼 저는… 아주…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원래 입덕부정기가 가장 맛있는 거라고요… 아이다랑 라다메스가 지금 둘 다 입덕부정기예요. 비포선셋 찍고 있으면서 아닌척함ㅋㅋㅋ “뒤돌면 금방 잊혀지게 될 여자”는 영어로 보면 가사가 두 가지입니다. A woman whom I hardly know at all and should forget

A woman whom I hardly know at all and will forget

조동사 차이 보이시지요 엉엉엉엉

잊어야 할 여자➡️잊을 여자

그러나 둘 다 처절히 실패합니다… Should에서 will로 가는 과정에는 다양한 판단과 생각들이 있을 겁니다. 라다도 아는 거죠. 이 여자는 위험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갈 수도 있다. 그러니 뒤도는 순간 잊어야 할 대상에서, 반드시 잊을 대상으로 바뀌는 거죠. 그러나 사랑에서 부정의 말은 뭐다? 반대의 마음을 수반한다. 라다메스는 중얼거립니다. 완전히 홀렸어
내가 얘기한 그 모든 것
그녀는 다 알아 자유를 말하는 여자. 이제 공주와 결혼해서 파라오가 되어 다시는 이집트 땅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서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남자에게 네 인생의 주인은 너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라고 말하는 여자. 감히 궁정 노예 앞에서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짜증 낼 줄도 아는 여자.

자유의 달콤함을, 용맹함의 가치를 아는 여자.

사실 왕 자리 따윈 요만큼도 관심이 없고 뛰어다니며 정복 전쟁을 할 마음만 만만했던 라다메스는 그 말을 듣고 깊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자기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문제는 그 선택권으로 하는 일이 고립과 파멸임ㅋ
그것도 교만과 아집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타인을 사랑해서 발생하는 파멸입니다.
눈을 가리고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랑… 하 이걸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요…

선택이요?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선택합니다. 사랑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됩니다. 사랑에 구속된 라다메스는 정말로 자유롭게, 모든 걸 버리기를 선택하게 됩니다. 재산, 지위, 명예, 가족까지. “네가 나의 전분데”(Written in the Stars)

라다메스의 사랑은 가히 신화적입니다. 별들은 계속해서 요구합니다. 네가 네 사랑을 위해서 어디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 보자.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놓으렴. 그렇다고 해도 네 사랑만은 남을 테니. 네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까지 내놓을 수 있는지 보자. 그래서 라다메스는 정말로 다 버리고 고립되길 자처합니다. 너무 좋죠…

- 네 인생에는 무한한 자유가 있고 넌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 알았어. 무한한 자유로 지금부터 널 사랑하기를 선택해서 너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다 버릴게.

이렇게 자유는 구속이 되고, 눈앞에 펼쳐질 예정이었던 장밋빛 모험과 피의 정복은 감옥으로 수렴되고, 삶은 죽음으로 내달립니다. 기다리고 있는 건 밤의 어둠처럼 검은 파멸뿐.

그럼에도,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16세의 쾌남이란 그런 것입니다. My Strongest Suit(reprise)

암네리스의 공허함과 허무함을 이해하는 아이다. “또 다른 나”를 찾게 될 거라고, 모두가 기대하는 모습대로 살기 위해 자신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암네리스에게 말하는 아이다.

아이다가 하는 말은 늘 한결같아요. 라다메스에게도 암네리스에게도. 너의 본모습을 찾아가라고. 너는 할 수 있다고. 주변에서 기대하는 거 말고, 네가 원하는 걸 하라고. 그래서 라다메스도 암네리스도, 아이다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죠. 신뢰하고 기대요. 자신을 이해해준 첫 번째 사람이니까.

아이다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자고.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아이다에게는 정해진 길이 없어요. 아이다는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었고 이제 누비아의 공주로 돌아가기는 요원해 보이니까요.

정체성도 혼란스럽고, 누비아인 노예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있으면서, 홀로 남겨진 아버지도 걱정해야 하고, 자기 마음은 부평초처럼 흔들려요. A Step too Far에서 라다메스는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사실 진짜 혼란스러운 건 아이다일 거예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누비아의 공주님은, 누구보다도 산산이 찢긴 마음을 안고 정처 없이 헤매게 됩니다. 아이다는 누비아 백성들에게 힘이 되는 공주님도, 모든 걸 다 버리고 라다메스와 국경에 집을 짓는 필부필녀도 될 수 없으니까.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조언이, 정작 자신은 희망의 한 조각도 찾을 수 없이 어둠 속에 내던져진 소녀에게서 나온다는 거 너무 슬프고 짜릿하죠.

Dance of the Robe

그래서 그 소녀는 이제 왕관을 받아들게 됩니다.

네헤브카가 누더기 예복을 가져와서 입혀줍니다.

사실 라다가 아이다한테 빠진 건 너무 잘 이해가 되는데 아이다가 라다한테 빠진 건 어느 시점인지 궁금했거든요. 근데 제 생각엔 여기예요. 놀랍게도…

인챈에서 알 수 있듯이(“방금 만난 그에게”) 아이다도 라다메스에게 어느 정도의 호감이 있었어요. 그러나 아이다는 라다처럼 모든 것을 던져버리기엔 적국의 공주로서 자존심도 세고,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죠.

그래서 My Strongest Suit에서 라다메스가 아이다를 만나기 위한 구실로 암네리스를 찾아와도 아이다는 구실을 대어 매몰차게 거절해요.

그러나 메렙의 주도로 누비아인 노예들을 만난 순간,
자기에게 거는 그 무거운 기대들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저는 여기서,
아이다가 사랑에 빠지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합니다. 누비아의 백성들을 위해 예복을 입고 투사가 되어달라니. 자유롭고 생기발랄한, 마치 야생의 새 같은 아이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겁고 큰 짐이었던 거죠.


라다메스의 사랑이 자유를 향한 갈망에서 시작되었다면 아이다의 사랑은 책임에 대한 도피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사랑이 한 번 시작되면, 그 호랑이가 한 번 내달리기 시작하면, 처음 시작이 어땠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세계가 사랑으로 수렴하고 사랑은 세계를 저버립니다.

Not Me

하 저 이 노래 너무 좋아요
사랑에 대한 찬가이면서 마음에 대한 고백이면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복기예요. 아이다와 암네리스가 노래합니다.

난 사랑이 이렇게 좋은 줄
나는 몰랐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나는 몰랐어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서
그 모든 세상 내던질 줄은
나는 몰랐어 하……
볼 때는 좋았지……
2막 가면 이 노래 생각하며 눈물 줄줄 흘리게 될 텐데…

네 이 노래를 듣고 저는 확신했어요 아이다는 Dance of the Robe에서 사랑에 빠지기로, 혹은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것이 맞다…
그러니 이제 저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토록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려 했던 사랑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니, 이렇게 좋은 것이었다니. 나는 몰랐어.
아름답죠. 벅차고요. 그리고 슬퍼요…ㅠㅠㅠㅠ 한편 해맑은 우리의 장군님이 외칩니다.

“별 거 아냐! 내 전재산이야!^^”

전재산을 털어 누비아인 노예들을 구휼하고, 마치 “마트 세 군데 돌아서 허니버터칩 사왔어!^^”처럼 말하는 해맑은 패기… 하 애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메렙ㅠㅠㅠㅠ 메렙아ㅜㅜㅜㅜ Not Me 내내 절규하는 메렙…
메렙이 계획했던 것들이 모두 틀어질 때,
자신의 주인의 결혼도, 자신의 공주님의 결정도,
그 불확실하고 연약한 마음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모두 뒤틀리고 엉망이 됩니다. 메렙은 약은 사람이에요. 상황을 보면서 움직일 줄 알고, 눈치를 볼 줄 알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적절한 수단을 일으킬 줄 알죠. 모두 생존 스킬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선 이집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메렙이 한평생 쌓아 온 것이 그놈의 마음!!!! 하나 때문에 개판이 납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설득도 불가능하고, 되돌리는 것도 불가하죠.
마음이니까.

라다메스의 마음에 의지해 자신의 생존을 도모했던 메렙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겠죠.

Elaborate Lives 나왔다!!!!!!!!!!! 발코니씬!!!!!!!!!!!!!!!!!!! 뮤지컬 역사상 가장 섹시한 고백!!!!!!!!
와 저 3층인데도 숨 참고 봤어요….. 최라다 몸 좋더라…
이 시대의 참 남주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두 무릎을 다 꿇고… 사랑을 갈구해요….
그렇다 사랑을 청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성 상 드립니다.

여기 한국 연출이 대단해요. 무대 양 끝에서 시작해서, 아이다가 망설이는 사이 라다메스가 천천히 다가오면서, 무릎을 꿇고 사랑을 청하며 애무를 합니다… 와 진짜 난 이 장면 전까지 내 심장이 안 뛰고 있었는 줄 알았어… 무대 장악력이 와…

우리의 복잡한 인생들
야망들로 가득해
그 속에서 우리들의 사랑
어떻게 살아있을까

해석: 널 위해 내 야망을 다 버릴게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
그런 삶은 난 싫어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것
그런 사랑 난 싫어
너와 있고 싶을 뿐
평화롭게 영원히

해석: 난 이제 모험도 전쟁도 바라지 않아 놀랍게도 난 평화를 원해 너와 단 둘이 영원히 평화롭기를 누구도 우리 둘만의 세계를 파훼하지 않기를 지금 나의 이 고백
부담되겠지만
완벽한 때가 오길
기다릴 수 없어

해석: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 하지만 내가 널 사랑해 부담되겠지만~ 하면서 무릎 꿇은 자세에서 천천히 일어서면서 아이다 아이다의 양손을 자기 양손으로 하나씩 잡는데 정말… 기절… 서윗… 열정… 불타는… 정열… 하 내 눈으로 무대에서 한 번이라도 이걸 봐서 너무 다행이다ㅜㅜㅜㅜㅜㅜ
그리고 열정적인 첫날밤이… 시작됩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요… 저는 그만 여기서 정신을 잃고

The Gods Love Nubia 그러나 공주님에게는 아직 시련이 부족합니다.
조국과 사랑 중에 뭘 고를래?
너의 아름다운 조국이 너를 부르는데?

후 기력 딸린다
2막은 좀 이따… 쓰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이틀 걸렸음

2022년 6월 1일부터 6일까지, 2박 5일의 일정으로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특별 휴가 사흘을 받은 공무원과 수업을 월, 화, 수요일에 몰아 넣었는데 6일 수요일이 공휴일인 학생만이 짤 수 있는 행운의 일정!

코로나로 인해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갈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

그리하여 우리는 수요일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토요일에 예약하기에 이른다.

 

사실 비행기 예약 후에도 갈지 말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으나, 주말 예약한 덕분에 당일 취소가 불가능해 결제 후에는 취소 위약금이 붙었다. 위약금이 14만원이나 되어 무조건 가야만 하는 상황이 펼쳐지자 집에 있는 모든 달러를 다 끌어모아 여행 자금으로 끌어넣었다. 이쯤 되자 여윳돈을 다 끌어넣어 가는 여행인 만큼 절대로 아쉬움이나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150퍼센트 즐기고 와야만 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가서 느긋하게 누워 있다가 오기나 해서야 앞으로 몇 달간 우리를 고생시킬 카드 할부와 이 한 번의 여행으로 날아갈 내 비자금이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게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답지 않은 일을 시작한다. 2박 5일의 여행 일정을 시간 단위로 짜기!

세상에 하와이에 학회 가서도 계획이라곤 하루는 바다 보고 하루는 박물관이랑 미술관 가자... 가 전부였던, 여행은 가서 끌리는 대로 움직이다 보면 뭐가 돼도 된다는 생각으로 돌아다니는 극한 P인간의 사멸한 일정 짜기 세포가 벼락을 맞고 무덤에서 기어나왔다. 역시 상당량의 돈을 인질로 잡고 사람을 간절하게 만들면 사람은 뭐든 한다.

 

그리하여 9시 20분 수업에 8시 50분 기상을 하는(교통 편도 20분) 내가 사흘 연속으로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 스케쥴이 완성된다.

싱가포르는 긴 관광에는 적합하지 않은 도시국가라고 하지만, 찾아보면 은근히 갈 만한 곳이 많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다는 것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았다. (마리나베이샌즈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이다) 무엇보다 **동물 친화적인** 동물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주면서 동물을 볼 수 있어!!!! 결국 동물원을 가지는 못햇지만 리버 원더스와 나이트 사파리는 반드시 가야 한다는 일념 하에 계획을 짰다.

 

그리고 계획을 짜는 사람이 돈을 쓰는 법이라는 법칙에 따라 환전 및 자금 운용도 전적으로 내가 맡았다. 처음으로 해외의 사설 환전소에서 돈을 환전해 봤다. 스릴 넘치는 경험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 3만보씩 걷기 2박 5일 싱가포르 여행이 시작되었다.

 

일단 여행의 시작은 20시 비행기를 타고 인천을 출발하는 것, 그리고 새벽 3시에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내리는 것이었다. 일단 표가 그 시간대밖에 없었고, 이렇게 하면 수요일에는 숙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숙박비를 하루 절약할 수 있었다. 나는 공항 노숙이 처음이었기에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참고로 우리 집의 가족 구성은 극한 P인간인 나, 극한 J인간인 동거인, 그리고 반려묘 밀카다. 각자의 상담 선생님이 추천한 대로 동거인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편안하게 다니는 여행"을, 나는 "계획대로 굴러가고 내가 통제 가능한 여행"을 시도해 봤다. 나는 나름대로 통제감과 안정감을 얻은 즐거운 여행이었고, 항상 계획 짜기와 금전 출납을 담당했던 동거인은 다 내려놓고 쉴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여행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Mission 1: 밥을 먹을 것인가, 싸울 것인가!

 

인천공항에 당도했는데 문을 연 식당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정말 단 하나도!

 

아직 항공 운행이 불안정해서인지 공항은 흡사 유령도시와 같은 상태. 짐 부치고 표 찾고 와이파이 찾고 좀 쉬기까지 다 해서 30분도 안 걸린 건 좋았으나 그렇게 출발층 면세구역 안으로 들어오자, 안 그래도 한산했던 공항이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불을 밝힌 매장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아직 7시 15분밖에 안 되었는데도! 그나마 문을 연 식당들을 재빠르게 검색해 뛰어가기를 두 차례 반복했으나 "이제 영업 끝나서 주문이 안 돼요"를 연타로 맞고 뻗었다. 아워홈 푸드코트는 다 닫고 한식을 파는 코너 하나만 열려 있었는데, 안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있었음에도 우리는 단 1분 차로 입장을 거절당했다. 이 와중에 굳건히 불을 밝힌 SPC 계열의 도넛집, 빵집, 주스집 등이 얼마나 얄밉던지. 정말 걔네만 열었다. 심지어 아이스크림 집까지 영업 중이더라.

 

그렇게 헤매다가 겨우 찾은 닭강정 집을 향해 우리는 전력질주를 했다. 비행기는 21시 출발. 창이 공항엔 3시에 내리게 되는데다 저가항공이라 기내식도 제공되지 않는 상황. 우리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공항에 일찍 오느라고 저녁을 굶은 상태. 이렇게 가다간 싱가포르에 도착하기도 전에 포악한 두 마리 짐승이 서로를 향해 가방을 던지며 싸우는 진풍경을 보게 될지도 몰랐다. 밥을 굶어서 좀비가 되는 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상황이었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우리 뒤로 줄이 나래비로 서기 시작했다. 직원 분은 난감한 얼굴로 늘어선 줄을 보시더니 "지금부터 오리지널 스몰 사이즈만 주문됩니다!"라고 선언하셨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결정이 내려지기 10초 전에 주문을 완료한 덕에 겨우 미디움 사이즈의 닭강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300g의 닭강정을 소중히 나눠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공항은 편의점이라도 하나 개설해달라ㅜㅜ 김포공항엔 몇 걸음 걷지도 않아서 편의점이 줄을 섰던데ㅜㅜ

 

그렇게 우린 창이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랜딩 시간은 새벽 세 시. 짐 찾고 입국하고 다 하고 나니 불 꺼진 새벽의 공항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피곤하고 배고픈 우리는 짐 찾으면서 봐 둔 편의점으로 달려갔으나 갑자기 편의점이 재고 채우는 시간이라며 문을 닫는 사태 발생. 그렇게 공항을 배회하는 청원경찰들에게 물어가며 겨우 문을 연 식당을 찾았다. 공항 푸드코트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허름한 딤섬 집. 테이블엔 우리처럼 새벽비행을 마친 사람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딤섬 몇 개를 받아 자리에 앉자마자 한 입 넣었는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 뭐야? 뭔데 맛있어? 새벽에 영업하는 공항 딤섬집인데? 세븐일레븐 샌드위치 같은 맛이어도 감사합니다 하고 먹을 생각이었는데? 왜 맛있는데?!

달콤한 차슈가 든 딤섬, 돼지고기 소가 든 딤섬, 새우부추만두, 커스터드 소가 든 딤섬. 왜 맛있죠?

아니... 이거 반칙 아닌가... 왜 맛있지... 결국 우리는 추가주문을 했다. 이때 처음으로 싱가포르 코피를 먹어 봤는데, 사전 지식 없이 그냥 코피 주세요 했더니 달콤한 연유가 든 묵직한 커피가 나와서 꽤 놀랐다. 보온통 같은 데서 따라주는데, 연유를 넣어서 걸쭉했다. 나중엔 천천히 연유를 가라앉혀서 위에 뜬 커피만 조심히 마셨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블랙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코피 오 꼬숑"을 달라고 주문해야 한댔다.

 

새벽 야참을 먹고 대충 시간을 때우다가 5시 어름이 되어 공항에서 씻고 준비하고 내려가 본 지하철. 공항이랑 연결되는 T3라인이다. 참고로 창이 공항은 화장실이나 쉴 공간 등이 잘 되어 있어 통로에서 시간을 때우기 좋았다.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둘이 번갈아 가며 조금씩 자다가 나가기 직전에 화장실에서 얼굴을 정비했다. 사진 찍을 수 있는 몰골은 만들어야 했기에. 그리고 더우니까 선크림도 잘 챙겨 발라야 한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하철은 미래도시 같았다. 정말 잘 정비되어 있고 예쁜데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신나서 방방거리며 사진도 찍고 싶었지만 그럴 정도의 정신상태가 아니었던 새벽 비행자들은 사진 한 장 겨우 건지고 말았다. 이때 지하철 역에서 교통카드인 이지링크를 구입했다. 이지링크 카드는 싱가포르에서 사용하는 교통카드로, 모든 대중교통에서 사용 가능하고 편의점 등에서 이지링크로 결제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선불식 교통카드와 똑같다. 이지링크 카드 한 장에 10불에 구매 가능하며, 카드를 사면 기본으로 5불이 들어 있다. 카드에 5불, 미리 충전된 금액에 5불을 더 지불하는 셈이다. 남은 금액은 환불이 가능하지만 카드값 5불은 환불이 안 된다. 그리고 교통수단에 탑승 시 카드에 잔액이 3불 이하로 남아 있으면 탈 수 없다.

우리는 원래 싱가포르 투어리스트 패스(3일권 30불)를 구매할 생각이었으나, 창이공원에 일출을 보러 가야 하는데 투어리스트 패스는 8시 반부터 판다고 해서 이지링크로 하기로 했다. 지하철 안에 있는 창구에서 이지링크는 파는데, 투어리스트 패스는 파는 역과 안 파는 역이 나뉘어 있고 파는 역마다 팔기 시작하는 시간이 다 다르다. 투어리스트 패스를 살 경우에는 어느 역에서 살 수 있는지, 몇 시부터 살 수 있는지를 검색해 보고 가는 게 좋다. 

 

보통 시 외곽(주로 동물원 지역)으로 나가지 않고 도심만 돌아다닐 경우 투어리스트 패스는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 10불을 다 쓸 수 가 없다고. 우리는 동물원에 갈 생각이어서 투어리스트 패스를 사려고 했던 건데, 결론적으로 이지링크를 사용해 시 외곽으로 나가는 비용을 포함해서 3일간 인당 총 25달러 정도 든 것 같다. 시 외곽으로 나가는 지하철은 다른 지하철과 좀 다르다. 공항철도 같은 느낌으로 다른 지하철로 환승하려면 (돈이 차감되는)환승 게이트를 지나야 하고, 안에서 나오는 안내방송 등도 좀 더 관광객 중심인 게 느껴진다.

 

이지링크 카드. 캐릭터와 콜라보했는데 귀엽다.

Mission 2: 창이 공원으로 가서 일출을 보자!

 

https://goo.gl/maps/EraXkCXdTiW9nq4u5

 

창이 비치 공원 · Nicoll Dr, 싱가포르 498991

★★★★★ ·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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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벽 6시에 버스를 잡아타고 텅 빈 도로를 달린다. 동남아 지역은 교통이 복잡해서 차나 택시 이동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싱가포르는 언제 봐도 도로가 텅텅 비어 있었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가 한다. 텅 빈 새벽길을 달리는 재미가 있고, 특히 육교나 집들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싱가포르는 조경을 잘 해 놓기로 유명한데, 육교가 많고 육교마다 이렇게 양쪽에 꽃과 식물들을 심어 조경해 놓았다. 벌레가 걱정되긴 하지만 볼 때마다 아름다워서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도착한 새벽의 창이 공원. 창이 공항에서 가까우면서 일출을 볼 수 있는 바다를 찾다 보니 선택지가 창이 공원뿐이었다. 차로 달리면 1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버스를 타니 30분 남짓을 달려야 한다. 한적한 공원에 슬슬 사람들이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국적인 야자수들이 곧게 뻗어 있고, 해안가에는 콘크리트로 주물을 뜬 벤치들이 있다. 커다란 까마귀들이 돌아다니고, 재재거리는 새소리가 들린다.

일출이 시작되었다. 이날은 날이 맑아 처음부터 끝까지 일출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이곳의 바다는 모래사장이 아닌 이끼와 돌로 뒤덮여 있었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에 한참 동안 바다를 구경했다.

그리고 이 공원의 장점이자 단점. 비행기를 볼 수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새벽이 지나고 일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과장 없이 10분에 한 대 정도는 비행기가 지나가기 시작했다. 비행기의 국적과 상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나간다. 시끄러움을 감수할 수 있다면, 비행기를 질리도록 관찰할 수 있다. 우리도 실컷 구경했다.

 

Mission 3: Tong Ah Eating House에서 아침을 먹자!

https://goo.gl/maps/Rke2o2U2ULbQ4ubF8

 

Tong Ah Eating House · 35 Keong Saik Rd., 싱가포르 089142

★★★★☆ · 싱가포르 레스토랑

www.google.co.kr

구경을 실컷 했으니 이제 밥을 먹으러 움직일 시간. 그런데 구글 검색을 했더니 아까 내렸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그 버스가 한 시간에 걸쳐 빙 돌아서 다시 공항으로 데려다 준단다. 이게 무슨 소린지 싶어 좀 더 자세히 보니까, 건너편에 정류장이 있는데 건너갈 횡단 보도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무단횡단을 하라고 사용자에게 권할 수 없는 구글 지도는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시간 절약을 위해, 화물차가 지나가는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 하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새벽이니까 가능했지 좀 더 교통량이 많았으면 못 할 짓이었다. 캐리어까지 끌고... 싱가포르 여행 긴장되는 순간 Top 5 안에 들었다. 공항 근처여서 그런가 자꾸 화물차들이 지나다녀서 정말 무서웠다. 게다가 싱가포르에서는 무단횡단을 하면 벌금을 문다는데... 그래서 정말 쫄깃한 심장을 안고 길을 건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단횡단 벌금은 유명무실한 것 같았다. 나중에 공항에 갈 때 현지인에게 대체 횡단보도 없이 저 정류장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 봤는데 그분이 보무도 당당하게 우리를 이끌고 무단횡단을 해서 정류장에 데려다 주었다ㅋㅋㅋ)

 

그렇게 도착한 지하철 역. 이제부터는 지하철을 타고 Tong Ah Eating House가 있는 차이나타운 역으로 이동한다. 슬슬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출근 러쉬는 시작되기 전이다. 지하철 역들이 하나같이 아름답게 잘 지어져서 감탄을 자아냈다. 지하철 내 안내 방송은 영어와 중국어를 포함한 4개 국어로 진행되는데, 타밀어 방송에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해피 해피"라는 말이 자꾸 나와서 슬몃 웃음이 났다.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 먹으러 가는 길.

 

목적지에 도착해 시킨 아침. 이곳은 카야토스트의 원조집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허름하고 현지인 단골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좌석은 여러 개 있는데, 우리는 벽에 붙은 2인용 자리를 차지했지만 대부분은 홀 중앙에 있는 큰 원탁에 합석해 둘러앉아 먹는다. 호커 센터 같은 곳에서도 흔히 할 만큼 합석 문화가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우리는 기본 카야 토스트와 프렌치 토스트, 코피(이때까지도 블랙커피를 주문하는 법을 몰라서 연유가 들어간 커피를 받았다)를 시켰다. 한쪽에 판단 잎으로 삼각김밥 모양으로 싸인 것들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판단 잎에 싸인 밥 같은 것을 먹기도 하던데, 그런 메뉴는 일단 메뉴판에는 적혀 있지 않았고 우리는 저게 뭔지 몰라서 그냥 카야토스트만 시켰다. 시키면 우선 뜨거운 물에 담긴 달걀 두 알을 꺼내주고 음료가 먼저 나온다. 다들 뜨거운 코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싱가포르의 더운 날씨에 기가 질려서 혼자 차가운 걸로 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타이거 맥주잔에 담아주었다. 호쾌하다.

달걀은 세트를 시키면 두 개가 기본으로 나온다. 사진은 달걀과 커피가 붙은 프렌치토스트 세트와 아무 것도 딸려나오지 않는 카야토스트 세트를 시킨 것이다. 달걀을 까면 쏙 나오는데, 살짝만 익은 수란에 토스트를 찍어 먹는다. 노른자에 찍어 먹고 간장을 뿌려서 남은 달걀을 후룩 마시면 맛있다.

코피는 맛있었지만 일단 너무 진해서 커피가 아니라 주스 같았던데다 아침부터 진한 카페인을 두 잔 연속으로 들이키기에는 위장이 비명을 질러서 반쯤 먹고 남겼다. 버터와 달걀과 가당연유 커피라니 아침잠을 깨우기에 딱인 조합임에는 분명하지만 저걸 매일 아침 먹으면 카페인이 위장에 구멍을 뚫지 않을까 무서워졌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거리를 구경하며 걷기 시작한다. 숙소가 차이나타운이라 밥을 먹기 전에 짐은 미리 숙소에 맡겨 두었고, 이제는 오늘의 목적인 실론소 비치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향해 간다.

 

걷다가 발견한 이상한 나라로 가는 입구. 영문과 학생들의 악몽(...) 세상에 대체 왜 Heart of Darkness라는 이름의 클럽이 있는 것인지? (흡사 클럽처럼 보였다) 저게 진짜 조셉 콘래드의 그 Heart of Darkness인지? 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싱가포르의 맥주 브루어리였다(여전히 이름을 왜 저렇게 지었는지 알 수 없다...). 오이 향이 나는 맥주를 파는데, 몇 병 쟁여 오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건물의 조경도 이렇듯 아름답다. 거리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뒤의 건물을 자세히 보면 두 건물 사이를 잇는 다리에 식물을 잔뜩 심어두었다. 신록이 가득해 아름답다.

 

신록이 아름답고 부러웠다. 우리도 이런 풍경... 이런 거리 주세요... 거리 조경에 세금을 좀 더 쓰자... 가로수를 함부로 가지치기하지 말자...

 

그리고 마주친, 보무도 당당한 계(?)공.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닭이 걸어다닌다. 쟤 운다... 아니 꼬끼오- 하는 소리가 나길래 어디서 닭이 ㄴ우나... 했는데 정말로 닭이 있어! 걷고 있어! 양반처럼 걸어! 이건 성큼성큼도 아니고 어슬렁어슬렁도 아니여... 걷다가 멈춰서 한참 구경하며 웃었다. 

 

실론소 비치로 가는 더블데커를 탔다. 싱가포르에는 이층 버스가 많다. 이층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좋은 도시다.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짰던 탓인지 이때부터 슬금슬금 피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겐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남았고 벌써부터 지칠 수는 없었다.

 

Mission 4: 실론소 비치로 가자!

 

실론소 비치로 가려면 모노레일을 타야 한다. 모노레일을 타는 곳은 복합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는데, 좀 복잡하게 되어 있다. 복합 쇼핑몰과  MRT(싱가포르 지하철)과 모노레일이 같은 건물을 공유하기 때문에 삐끗 잘못하면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될 수 있다. 층수와 방향을 잘 살피고 반복해서 길을 확인하자. 구글 지도는 외국에 한해서 거의 정확하게 내 위치를 찍어주지만, 건물 내에서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사진 상의 길이 나왔다면, 길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여차저차 플랫폼에 도착했다. 유니버설에 간다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었다. 그러나 도저히 적도 근처의 나라에서 여름에 파니에를 입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어차피 파니에 챙기고 싶었어도 동거인이 짐 줄이고 싶다며 거절했겠지만^_ㅠ 쨍한 오렌지색이 착즙주스 색 같고 예쁘다.

 

실론소 비치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센토사 섬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센토사 모노레일! 모노레일에서 밖을 내다보기를 좋아하는 나는 무조건 맨 앞 자리를 사수하려는 욕망이 있다. 그렇게 차지한 맨 앞 자리에서 보게 된 것.

 

NO DURIAN Zone.

 

호텔 엘리베이터를 포함한 모든 공공장소에서 두리안을 배척한다. 두리안을 들고 탈 수 없다. 길가에서는 두리안을 쌓아놓고 판다. 대체 수많은 두리안은 누가 다 먹는 것이며, 그걸 집에 들고 갈 때는 무엇을 사용하는 것인가?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서 이동하나?

 

운전사 분의 유니폼이 너무 좋다. Everyday's SUN day!

그렇게 도착한 실론소 비치. 날은 흐리지만 볕은 따가워서 선크림 바르기를 조금만 게을리하면 팔뚝이 따끔따끔하다. 모래는 단단한 편이고 공기엔 습기가 배어 있고 바다는 맑지만 산호빛을 띠지는 않는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꼬마기차를 타고 실론소 비치를 한 바퀴 돌 수 있으니까 타 보면 좋다. 구획들은 에메랄드, 사파이어, 루비처럼 보석 이름으로 이름지어져 있다. 별달리 볼 게 있지는 않지만 휴양지의 풍경과 예쁜 조경을 감상하기에 좋다.

꼬마기차를 타고 가던 중 조경이 예뻐서 찍은 사진. 정말 예쁜 꽃과 식물들로 꾸며져 있으니 쉬면서 둘러보면 좋다.

그리고 대망의 유니버설!

해리포터 존이 없다는 게 슬펐다. 세상에 해리포터가 없으면 유니버설이 왜 존재하는가. 유니버설의 존재 이유의 90퍼센트는 해리포터가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말만 하고 잘 놀다 왔다. 부지가 작아서 많이 걷지 않아도 되고 알찬 느낌이 든다. 처음 들어가면 세서미 스트리트로 시작해서 미니언즈-트랜스포머-롤러코스터-미이라-쥬라기공원-장화신은 고양이-슈렉-마다가스카르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놀이기구의 수준은 어린이도 즐길 만한 수준으로, 롤러코스터가 움직임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움직인다. 롯데월드 롤러코스터 정도만 탈 수 있어도 적당히 탈 수 있다. 

특별히 좋았던 건 쥬라기공원. 우비를 사서 입는 걸 추천한다. 사실 비닐 우비를 하나 가져가면 좋다. 에버랜드 아마존 익스프레스와 비슷한데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니 실감나서 재미있고,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마지막의 스릴 때문에 한 번 더 타고 싶었는데 젖고 싶지 않다는 동거인에게 거절당했다.

쥬라기공원처럼 소지품이 젖을 우려가 있거나 속도가 빨라서 소지품이 날아갈 우려가 있는 놀이기구는 입구에서 미리 소지품을 라커에 넣고 오도록 안내한다(반드시 넣어야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 라커는 시간 제한이 있고 무료인 곳도 있고 돈을 무조건 받는 곳도 있는데, 이지링크 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온라인으로 표를 살 경우 자유이용권+패스트 패스(놀이기구당 한 번에 한해 놀이기구를 빨리 탈 수 있게 해주는 쿠폰)+음식 쿠폰+무료 팝콘 쿠폰+20달러짜리 기념품 쿠폰이 딸려오는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게 되는데, 쿠폰을 전부 써야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한 값을 하는 상품이다. 쿠폰을 다 쓰지 않을 거라면 그냥 자유이용권만 구매하는 것이 더 쌀 수도 있다. 무료 팝콘은 파란 색소가 뿌려진 미니언즈 팝콘이었는데 맛은 그닥이었고, 우리가 갔을 때는 왜인지 실내 식당이 다 닫혀 있어서 실외에서 핫도그를 먹으면서 음식 쿠폰을 사용했는데 핫도그가 의외로 맛있었다. 아래 핫도그 두 개에 3만 원쯤 하니까 쿠폰이 없었다면 안 먹었겠지만, 쿠폰을 쓰면 적당히 먹을만하다. 나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리는데 놀이공원 음식에 기대하기에는 꽤 높은 퀄리티다.

싱가포르의 대부분의 아케이드는 이렇게 천개가 있다. 비가 자주 오므로 비가 올 때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비가 오면 롤러코스터는 작동을 중지한다.

롤러코스터는 레일 색깔이 다른 두 가지 코스가 있는데, 사이론 코스는 발판이 없고 휴먼 코스는 발판이 있다. 나는 무서워서 끝까지 사이론 코스를 타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휴먼 코스를 타 보니 사이론 코스도 충분히 탈 수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쉬웠다. 역시 여행에서는 무서운 것도 일단 한 번 시도는 해 보는 게 좋다. (사이론 코스와 휴먼 코스는 운영 시간이 다르다)

여기서는 트랜스포머를 탈 수 있는데, 가장 스릴 넘치고 재미있었다. 강력히 추천한다.

 

Misson 5: 저녁밥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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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닫는 시간인 7시까지(목요일은 12-7시까지, 다른 날은 10-5시까지 개장한다) 신나게 놀고 나서 이제는 밥을 먹을 시간. 숙소가 차이나타운 근처라서 차이나타운 맛집이라는 동방미식에 가기로 했다. 폐장 시간에 유니버설을 나오면, 다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모노레일 역이 다소 붐빈다.

 

밤의 차이나타운은 시끌벅적하고, 조명이 화려해서 예쁘다. 후덥지근해서 얼른 시원한 가게로 들어가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예쁜 거리를 구경하느라 자꾸 걸음이 느려진다. 

동방미식은 유명한 가게인 만큼 사람이 많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자리는 있었다. 음식도 놀랄 만큼 빨리 나온다. 급하게 검색해서 여기서 먹으면 좋을 음식 두 가지라는 볶음밥과 그린빈 볶음을 주문했고, 동거인이 먹어보고 싶다는 시리얼 새우를 주문했다. 구운 새우 위에 달콤 바삭한 시리얼을 듬뿍 얹어주는 요리인데, 정말 맛있다!

동방미식에 대한 동거인의 평은 "여기서 며칠 더 있으면서 여기 음식 다 먹어 보고 싶다" 였다.

여기서만 끼니를 해결해도 절대로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집이다. 다만 양이 좀 적게 나오면 이것저것 시켜서 먹어 볼 텐데 둘이 먹기에 벅찰 정도로 한 음식의 양이 많다보니 여러 가지를 시킬 수 없어서 아쉬웠다. 직전에 팝콘을 먹어서 둘 다 배부르다고 해놓고 접시를 싹 비웠다. 

맥주는 하얼빈, 칭따오, 설화 세 가지가 있었는데 급하게 해본 인터넷 검색에서 설화 맥주가 중국 1위 맥주라고 해서 설화 맥주를 시켰다. 맥주를 시키면 얼음 잔을 줄지 그냥 잔을 줄지 물어보는데, 더워서 얼음 잔을 달라고 했더니 얼음을 잔에 채워 가져다주셨다(잔을 얼려주는 줄 알았다). 그리고 설화맥주의 맛은... 밍숭한 맛이다. 좋게 말하면 깔끔한 맛, 나쁘게 말하면 물 탄 맛. 그냥 칭따오나 하얼빈을 시키자...

주방에다가 무슨 소금 쓰냐고 물어보고 소금 얻어 가고 싶은 맛이다. 진짜 맛있다. 소금이 아니라 무슨 마법의 가루를 치는 것 같다. 그린빈 볶음을 주문할 때 동거인은 의심의 표정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린빈 볶음이 나오는 순간 흡입했다.

 

자리에 앉으면 접시와 물티슈를 주는데, 물티슈는 따로 값을 받는다. 물티슈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사용하지 말고, 계산할 때 사용하지 않은 물티슈를 가져가면 물티슈 값을 빼준다. 이 사실은 미리 알고 갔는데도 나도 모르게 물티슈를 사용해버려서 물티슈 값을 냈다. 한국에서 일부러 소독 티슈까지 사 갔는데... 여기서 주는 물티슈는 약간 미끌미끌한 소독 티슈의 질감이다.

 

거리에서 쌓아놓고 파는 두리안. 사람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고 한느데 내 코에는 가스 새는 냄새가 났다. 정말 궁금했지만 끝까지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점에서 발견한 옛날 장난감.

늦게까지 불을 밝혀두고 있던 예쁜 꽃집. 가히 식물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다. 에쁘고 싱싱한 식물들이 가득하니 자꾸 눈길이 갔다.

 

이 밤산책의 목적은 자기 전에 먹을 요거트를 사는 것이었다. 나는 화장실을 가리고, 낯선 곳에 가면 화장실을 잘 가지 못하기 때문에 여행을 하게 되면 반드시 요거트를 먹어야 한다. 분명히 근방에 스칼렛이라는 마트가 있다고 하는데 잘 찾을 수 없는 거였다. 그리고 겨우 찾아서 들어갔더니 물을 안 팔았다(!) 세상에 마트에서 물을 안 팔다니? 

아무튼 요거트는 무사히 샀다. 마트 내에 아예 냉장고가 없고, 소주든 주스든 요거트든 다 상온에 두고 팔더라. 맥주도(!) 아무튼 사진은 없지만 요거트는 맛있었다. 바닐라 맛에 깔끔했으니 요거트가 필요하다면 아무 요거트나 하나 사서 먹어 봐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숙소는 일층이 클럽 겸 펍이라 이층 숙소로 올라가자 역시나 시끄러웠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24000보를 걸은 사람들이므로,

아래층에서 코끼리가 쿵쾅대더라도 잘 잘 수 있었을 것이다.

씻자마자 그대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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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책을 보내주셨다.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으로, 2005년에 출간되었다가 16년만에 재출간되었다.
표지 제목에 쓴 사파이어 빛깔의 파란색 홀로그램박이 예쁘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그려진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책을 받고도 조금 어리둥절했다. 분명 책을 받고 싶어서 서평단 신청을 했지만, 청소년이 아닌 내게 기회가 올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어느 날 현관 앞에 도착한 분홍색 봉투는 선물 같았다. 크리스마스 즈음 도착한 선물.

단편소설집은 늘 선물 같다. 집게로 집어 봉지에 담아 무게를 달아 파는 사탕 같다. 서로 다른 맛의 사탕들이 한 봉지 안에 담겨 있다. 긴 지렁이 젤리의 겉에 묻은 새콤한 가루가 강낭콩 젤리와 복숭아맛 사탕에 묻기도 하고, 각설탕 모양의 사탕들이 서로 들러붙기도 한다. 특히 한 사람의 단편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모은 단편집일 때 이런 느낌이 더 잘 난다.
서로 다른 문체와 소재들이 모여 있을 때는 눈을 감고 봉지 속 사탕을 하나씩 꺼내는 것 같다. 매번 무슨 맛일지 궁금해하고, 새롭게 놀라면서.


귤과 커피를 준비하고 읽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표제작 <앰 아이 블루?>('엠'이 아니라 '앰'인 데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파란 하늘이나 블루베리나 수영장 물 같은 파란색에 대한 이야기. 귀엽고 유쾌했다. 게이에 대한 학교 폭력 이야기는 어둡지만 그 이후를 잘 풀어냈고, 마지막의 반전이 상큼하다.

다른 모든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두 번째 이야기, 신디와 '나'의 이야기였다. 수녀원 기숙학교에 다니는 두 여자아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이야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무한한 자유가 내게도 느껴져 기뻤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의 공통점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지점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풀어낸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단순히 게이이거나 게이가 아닌 상태, 혹은 디나이얼의 상태에 대해서 다루는 작품도 있지만, 퀴어성 자체에 대해, "아직 몰라도 되"며 어쩌면 영원히 정의하지 않는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 많이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첫 순간'에 대한 작품이 많이 있는데, 자신이 누구에게/무엇에 끌리는지 알게 되는 첫 순간의 강렬함을 말하고 있다. 혼란스러움이 시작되는 지점, 자신의 몸과 마음이 불화하기 시작하는 지점, 타인에게만 보이던 자신의 어떤 부분을 자신이 직시하게 되는 첫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좋다.

용감한 이야기들도 있다. 커밍아웃에 대해, 수용과 불화에 대해, 수용적이거나 그렇지 못한 가족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는 짧아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압축한다. 그 사이를 꿰어맞출 실이 되는 건 독서경험에서 꽤 즐거운 일이다. 특히, 불행한 닫힌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아마 이 부분이 이 책을 엮은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일 것이다. 불행은 상태일 뿐이라고. 언젠가 수용되리라고, 혹은 수용과 관계없이 행복해지리라고. 행복하지 않더라도 아직 잘 모르더라도 배제와 배척을 당하고 있더라도 상황은 나아질 수 있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시 책에 나오는 한 소녀처럼) 집을 떠나서, 자신에게 불행한 곳을 떠나서 새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어떤 방향으로 발화할 수 있는 가능성, 나의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을 알게 될 가능성, 자신에게 수용적이고 더 나은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가능성, 소중한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그들의 지지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무엇보다도 불안정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아쉬운 지점은 이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모두 서구이고,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7-80년대가 다수로, 22년에 한국에서 읽기에는 다소 이해가 어려운 지점들이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공간적 배경이 주는 어려움을 뚫고 모두를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고, 특히 여전히 생존의 위협에 내몰릴 가능성이 큰 - 가족에게서 쫓겨나거나 불화하는 퀴어 청소년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아주 많다 - 한국 청소년 퀴어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다가가는 지점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건 황금가지가 인용한 <릿허브>의 추천사 때문이었다. 

 

— “젠장, 세상이 끝나면 어쩌지”와 “젠장, 세상이 안 끝나면 어쩌지”의 중간에 살고 있다면 딱 맞는 작품.

 

나는 세상이 안 끝나면 어쩔지 고민하는 쪽이다. 지구온난화와 비인도적인 가축 사육에 대해서 고민할 때도 그렇지만 대체로는 내 삶에 대해서 고민할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이 이대로 계속 굴러간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은 대부분 나의 쓸모에 대한 생각으로 귀결된다. 내가 이렇게 계속 쓸모가 없다면, 이렇게 망망대해를 영원히 표류하는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면, 목표가 너무 많아서 헷갈리고 그 중에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면, 도달해야 할 목표가 너무 멀어서 끝내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면 내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왜 살아야 하지? 세상에 내가 필요하긴 한 건가? 이런 생각은 차라리 지금 당장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엄청나게 화려한 불 쇼 같은 대규모 운석 충돌이나, 지구에 있는 모든 화산이 동시에 폭발하는 모습을 담은 드론 촬영 영상 같은 걸 상상하면 기분이 약간 나아지는 것 같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어떤 요인 때문에, 전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자연재해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 책임 소재를 묻지 않는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이 돌연 끝나버린다면, 그렇게 돌연한 상황, 아무 맥락 없는 상황, 아무도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에 나는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어떤 예상도 들어맞지 않으므로 더 이상 예상을 할 필요가 없고, 어떤 루틴도 따를 필요가 없고,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하게 할 말을 잃은 상황에서 나는 어떤 해방감을 느낀다.

 

 

강렬한 색의 표지가 눈을 잡아끈다. 분홍, 보라, 청남색의 창문들. 해질녘의 뉴욕 오피스텔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의 큐브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답답한 것 같기도 하다.

 

 

<<단절>>은 내가 상상한 것처럼 돌연한 방식으로 이전에 존재하던 세상을 끝낸다. 그러나 내가 상상한 것만큼 단숨에 세상의 숨이 끊어지지는 않는다. 세상은 한 권에 걸쳐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꾼다. 선 열병이라고 불리는 포자 감염 질병이 뉴욕을 강타한다. 사람들은 천천히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사유 서비스가 각자 다른 속도로 작동을 멈추고, 공공 서비스가 그 다음으로 끊어진다. 재택근무와 휴가는 해당 직원이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선 열병에 걸려 천천히 죽어간다는 뜻이다. 이런 세상에서 중국계 미국인이자 이민 2세대인 주인공 캔디스는 몇 남지 않은 선 열병에 감염되지 않은 생존자다. 소설은 캔디스가 캔디스를 포함하여 아홉 명으로 구성된 작고 폐쇄적인 생존자 집단에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캔디스의 과거와 현재를 조밀하게 엮어 낸다. 

 

캔디스는 뉴욕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생존자로, 밥이라는 통제적이고 지배욕이 강한 남자의 인도 하에 시카고에 있다는 복합 문화 시설로 가는 로드 트립에 합류한다. 이들은 움직이면서 마트나 복합 쇼핑몰이나 개인 주택을 털어 미래를 도모한다. 당장 사용할 물품뿐 아니라 미래에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품들까지 닥치는 대로 모으며 시카고를 향해 천천히 이동한다. 

 

<<단절>>은 지금까지 나온 중 가장 평화로운 좀비 소설이다. 선 열병에 감염된 사람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언어를 잃고,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루틴을 반복해서 재현한다. 좀비처럼 다른 세계를 향해, 더 이상 자신들이 속해 있지 않은 인간들의 세계를 향해 쏟아지듯 달려나오는 대신,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들을 집 안에, 익숙한 장소에, 익숙한 시간에, 매일의 루틴에 가둔다. 식탁에 앉으면 몇십 번이고 저녁 식사를 차리고 먹고 치운다. 화장을 하고 직장에 나가고 아무 의미 없는 업무를 처리하고 상한 음료를 마신다. 그러다가 영양실조에 걸려 서서히 말라 죽어 간다. 그들은 다른 좀비들처럼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떼를 지어서 몰려오지도 않고, 생존자들을 위협하지도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척한다. 자연스럽게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자신의 몸에 어떤 영양분도 공급하지 않지만, 무언가를 계속 공급하는 척한다. 이 새로운 유형의 좀비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세계에 갇혀 외부로부터 단절되고, 세계는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 유지하던 사회 인프라가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진 세계는 원시적인 소규모 공동체로 굴러간다. 돈이 의미를 잃은 세상에서 온갖 물건들이 가득한 마트나 상점을 습격하고, 필요한 물건과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트렁크에 가득가득 욱여넣는 광경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풍족함을 대리 체험하게 함으로써 순간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과잉 생산되어 쌓여 있다가 과잉 소비될 물건들은 이 소설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서서히 독자의 숨통을 죄인다. 어디든 마음대로 총을 쏠 수 있고,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약탈해서 얻을 수 있으므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길거리에 무한히 널려 있는 셈이다. 어쩌면 현대 독자들이 가장 해방감을 느낄 그런 장면들은 반복되면서 당연한 것이 되는데, 그렇게 모아 놓은 물건들이 그보다 더 많은 물건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 초라하고 하찮아 보인다는 것이 슬프고 우습다.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한 순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출장을 간 캔디스가 “가짜 화폐 같은 외화를 써버리고 말겠다는 탐욕스러운 광기”라고 묘사하는 홍콩에서의 쇼핑이 그렇다. 아직 선 열병이 발병하기 전, 사람들이 습관의 노예가 되기 전, 자기가 하는 일이 적어도 무언가를 돌아가게 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던 시절에, 캔디스는 홍콩 야시장을 걷다가 죽은 사람들을 위한 지전과 종이로 만든 물건들을 파는 가게를 발견한다. 캔디스는 부모님을 위해 지전을 구입하고, 룸메이트가 구독하는 온갖 잡지에서 아빠와 엄마를 위한 옷, 신발, 서재가 인쇄된 페이지 등을 찢어내 함께 태운다. 물건들은 처음에는 기본적인 것으로 시작해서 점점 범위가 넓어진다. 캔디스가 부모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계속해서 불어난다. 그래서 마침내 캔디스는 “아찔할 겅도로 많은 양에 놀라 말문이 막힌 엄마와 아빠가 그 산더미 같은 물건들을 샅샅이 파헤치는 모습”을 상상한다. “평생 필요한 양보다도 많은, 영겁의 시간에서조차 도무지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양의 물건”을 상상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가지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의 물건들. 그러나 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살며 그만큼의 물건들을 소비하게 될 것이고,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상상할 때 필요할지도 모를 물건들의 양은 항상 실제로 필요한 물건의 양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약간 내 봤다. 선 열병으로 모든 게 무너져 사람들의 집을 약탈해 삶을 꾸리면서도 일상용 식탁보와 특별한 날에 쓰는 식탁보를 따로 챙기는 마음들. 그런 마음이 왠지 오래 남았다.

 

 

<<단절>>에서는 모든 것이 서로 단절된다. 처음 봤을 때는 제목이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인 단어여서, 두 음절짜리 단어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단절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쓰이고, 보통 상태가 심각할 때 쓰이고 — 단절된 관계와 단절된 전선과 단절된 통신은 서로 이어져 있는 아주 가느다랗고 너덜너덜한 선조차 없다는 의미고, 단절 이후에는 단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 재고의 여지가 없을 때 쓰인다. 소설에서 모든 단절되는 것들은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다. 진짜와 가짜의 사이를 가르고, 과거와 현재의 사이를 가르고, 일상과 비일상 사이를 가르고, 거대한 크레바스처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단절된 두 상태 사이에는 항상 중간지점이 있다. 중간지점은 단절된 양쪽 중에 어느 쪽도 택하고 싶지 않을 때 들어갈 수 있는 대안적인 상태이면서 완전히 뒤틀려서 기형적으로 변한 상태다. 그리고 이 소설 전체가 그 중간지점이다. <<단절>>은 캔디스 첸의 성장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의 처음과 끝 사이에 있는 모든 서사는 캔디스 첸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기 위한 중간지점이다. <<단절>>은 끊임없이 캔디스의 현재와 뉴욕에서의 과거 일상, 유년기, 캔디스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오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뜨개질로 다리를 짜듯이 이전의 캔디스와 이후의 캔디스를 매개한다.

 

<<단절>>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캔디스의 배경과 현재다. 캔디스는 설정상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인물이지만 자신의 과거와 완전히 단절될 수 없는 인물이다. 이 모순점이 소설 내내 독자들을 미국, 캔디스 가족의 뿌리인 푸저우, 캔디스의 유년기를 보낸 곳인 솔트레이크시티, 캔디스가 동화되고자 했지만 영원히 동화될 수 없었던 뉴욕으로 동시에 잡아끈다. 캔디스는 뉴욕 시민이지만 동시에 관광객이다. 캔디스는 사진을 찍으러 뉴욕 곳곳을 다니면서 자신이 관광객으로 보이기를 바란다. 그건 캔디스의 외형, 아시아계의 얼굴과 신체 때문이다. 캔디스는  뉴욕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며, 그럴 바에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뉴욕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캔디스에게는 고향이 없다. 태어난 곳은 여섯 살에 떠났고 부모는 캔디스가 대학을 마치기 전에 죽었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집은 타인에게 매각되었고 가족의 모든 소유물은 솔트레이크시티의 창고, “차디찬 상자 모양의 보관 시설”에 보관되어 있다. 캔디스에게는 자신의 뒤를 받쳐 줄, 뿌리가 어디인지 상기시켜 줄 가족이 단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캔디스는 미국의 어디를 가든 그곳의 관광객이며 외부자다. 

 

캔디스가 백인 소녀였다면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더라도 캔디스가 겪었던 문화가 미국의 주류 문화인 한 캔디스는 어디에서든 자기 자리를 쉽게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캔디스는 모두에게 익명의 공간인 뉴욕으로 피신하기를 택했다. 자신의 유년기 경험과 자신이 밟고 선 지형을 함께 엮어내지 못할 때 우리는 불안해지고, 그곳의 문화와 우리 자신이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캔디스는 뉴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살아 본 적 있는, 실제로 땅을 밟아 보기도 전에 대중의 상상을 통해 어느 정도는 살아본 적이 있는 유일한 도시”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뉴욕이 대중 매체를 통해 모두에게 익숙한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약속의 도시이며 모두에게 익명성을 보장하는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중매체를 통해 뉴욕을 보고 느껴본 사람들은 뉴욕에 거짓 향수를 갖게 되고, 뉴욕에서라면 자기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그러나 그 기대마저 캔디스의 것은 아니었는데, 캔디스의 목적지는 구체적인 꿈이나 장소가 아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네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단다”라는 부모의 명제이기 때문이다. 캔디스는 무슨 일을 하든 근면하고 성실하게 임한다. 심지어 무직 상태일 때조차 매일 아침에 일어나 동일한 루틴을 따라 씻고 동일한 루틴을 따라 산책하고 사진을 찍는 일과를 주 5일 동안 꾸준히 반복한다. 그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다는, 혹은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순응하겠다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캔디스는 하룻밤을 보낸 상대들의 침대에서 아침나절을 뭉그적거리며 그 남자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궁금해한다. 그들이 어떤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있고 그걸 얼마나 실현시켰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캔디스에게는 실상 선택권이 없다. 대학 시절 캔디스가 산업 지구들을 찍으러 다녔을 때, 그곳 술집의 남자는 미국에서 자란 캔디스에게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라고, “넌 여기 사람이 아니야. 넌 우리를 모르잖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캔디스 역시 자신이 포착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작업을 중단했다고 말한다. 결국 캔디스는 하룻밤 만난 남자가 소개해 준 남자의 형이 하는 회사에서, 근면하고 꼼꼼하다고 평가 받는 중국계 미국인 사무직 노동자가 된다. 하고 있는 일이 정말로 마음에 들 때는 “매주 금요일 밤” 뿐이고, 돈을 벌어서 “시세이도 얼굴 각질제거제와 블루보틀 커피와 유니클로 캐시미어 옷을 사는 사람”이 된다. 물론 캔디스 개인이 선택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캔디스가 미끄러져 들어간 삶이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흔히 요구되는 삶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남자친구 조너선이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첫 번째 장소”가 “네가 한 인간이 되는 최초의 장소이자 네가 네 자신이 되는 최초의 장소야”라고 말할 때 캔디스는 자신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고아로 사느라 그런 삶에 질려 버려”서 “두 발로 걷고 차를 몰며 무언가를 헤매는 삶 속에서는 결코 안정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너선이 말하는 가족은 전형적인 대도시 교외의 백인 미국인 가정을 의미한다. 조너선의 모든 가족은 한 장소에서 평생 동안 살았으며 조너선만이 가족을 벗어나 “혼자 살아가는 첫 번째 장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캔디스의 모든 가족은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벗어나 이미 “혼자 살아가는 중” 이었다. 혼자 살아가는 부모와 함께 자란 캔디스는 가족과 문화와 동질감 속에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조너선이 요트를 타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 헤매는 동안 캔디스는 자기 자식에게는 뿌리 없는 삶이 아닌 다른 것, 제삼의 것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캔디스에게는 뒤로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다. 선 열병에 걸리거나 걸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할 때 캔디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계속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는 캔디스에게 돌아갈 가족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요구되는 미덕이기도 하다. 근면하고, 쓸모 있고, 항상 자신의 쓸모를 타인에게 증명해야 하는 것. 그것이 캔디스의 부모가 캔디스에게 원한 것이었고 캔디스 자신이 원한 것이었으며 미국이 이민자에게 원하는 것이다. 캔디스는 일도 없고 관리자도 없는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출퇴근 카드를 긁고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기까지 한다. 

 

소설이 던지는 의문은 이렇다. 선 열병에 걸린 사람과 캔디스는 대체 얼마나 다른가? 캔디스는 누구보다 선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살고 있는데 어째서 선 열병의 마지막 생존자가 된 것인가? 이런 의문은 소설의 중반쯤 가서 캔디스의 부모와 캔디스의 유년기, 부모의 삶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이렇게 바뀐다. 캔디스는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가? 이런 삶이 캔디스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캔디스는 갑옷처럼 자신을 두르고 있는 루틴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변한다. “캔디스의 삶은 얼마나 진짜인가?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느 만큼이 그저 “하는 척” 또는 “아닌 척” 하는 것인가? 그리고 “하는 척”과 “아닌 척”은 어디까지가 그저 “척”이고 어느 순간부터 진짜가 되는가?

 

소설은 진짜와 가짜 사이를 가르는 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단절, 이라는 말은 몹시 정확하고 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소설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일은 스펙트럼 속에서 진짜 보라색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처럼 불분명하다. 캔디스의 첫 직장이자 유일한 직장의 이름이 스펙트라이고, 캔디스가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스펙트럼? 이라고 되물은 것은 상징적이다. 스펙트라에서 홍콩으로 출장을 갔을 때, 캔디스는 “진품과 모조품 사이에 그토록 정교한 차이가 존재하는 곳”이자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경계선이 그토록 허술해 보이는 곳”이라고 홍콩에 대해 평한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것은 홍콩에서의 명품 쇼핑에 국한된 말이지만,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홍콩은 거대한 중간 지점이다. 그리고 캔디스는 미국인과 중국인 사이의 중간 지점이다. 캔디스는 홍콩에서는 중국과 남아시아에 외주를 맡기는 미국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뉴욕에서는 성실하고 근면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시아계 이민자의 역할을 기대받는다. 캔디스는 평생 양립 불가능한 두 상태의 사이에서, 명확하게 단절된 두 상태를 오가며 살아왔을 것이다. 캔디스의 아빠는 평생 동안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야근과 승진을 반복한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개인은 미국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캔디스의 가족이 고향 푸저우를 방문할 때마다 고향에 발붙일 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점점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캔디스는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촌인 빙빙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오로지 빙빙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개설한 위챗 메신저에서는 각자의 언어를 구글 번역기에 돌려 상대방의 언어로 만들어낸 피상적인 소통과,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친밀함을 어필하려고 애쓰는 답답한 상태가 반복될 뿐이다. 문화와 문화 사이, 주류 백인들과 다른 피부색의 사이, “예술 소녀” 들과 성경 부서의 성실하고 허약한 중국계 미국인의 사이. 메울 수 없는 간극은 캔디스 가족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리고 선 열병으로 인해 그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렸을 때 캔디스는 비로소 혼자 설 수 있게 된다. 캔디스를 규정하려고 했던 모든 제약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제약의 껍데기가 깨졌다고 해서 캔디스가 마법소녀처럼 곧바로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변신하지는 않는다. 소설은 캔디스가 루틴에 안주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시작해서 홀로 설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캔디스는 이탈을, 다른 궤적의 삶을 꿈꾸고, 결국 그렇게 하게 된다. 캔디스는 처음에는 집단에서 소소하게 일탈하는 작은 무리에 끼어 “마리화나를 피우지는 않지만 차 안에 가득한 연기를 마시며 간접흡연을 하는” 정도의 일탈을 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향해, 자신에게 처음으로 생긴 구체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장소를 향해, 빼앗은 차를 몰고 달려나간다. 

 

의미심장한 것은, 평생 캔디스에게 미국에서 “더 나은 기회”를 잡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했던 캔디스의 엄마가 캔디스의 탈출을 돕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캔디스의 엄마는 캔디스의 꿈에 나타나, 살아 있을 때는 한 번도 구사하지 못했던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며 캔디스에게 도망치라고, 밖에 있는 진짜 삶을 찾아 떠나라고 종용한다. 캔디스의 무의식은 다정한 엄마를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다시금 자신의 등을 떠밀어주는 엄마, 루틴 바깥으로 나가 이제 드디어 진짜 삶을 살아보라고 말하는 엄마를 처음으로 만들어낸다. 

 

트위터에서 봤던 어떤 밈이 떠오른다. 항상 등을 떠밀기만 하고 한 번도 자랑스럽다고 말해준 적 없는 내 아시아인 엄마에 대한 자조적인 평가다. 

 

마지막까지 잘했다는 말 없이, "그냥 이렇게 가는 거예요?"라는 딸의 말에 "그냥 이렇게 가는 거란다" 그리고 "한동안은 오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엄마. 전형적인 아시아인 어머니의 그 말이 이번에는 딸을 밀어 멀리 내보낸다. 실패와 성공을 가를 수 없는 곳으로 가라고, 처음으로.

계륜미라는 배우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비밀>로 알게 되었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계륜미를 본 것은 이 영화에서였다. 통칭 '어둠의 경로'라는 것이 인터넷에 스멀스멀 스며들어 있던 시절, 내 넷북(노트북이 아니었다!)의 하드디스크에는 프랑스와 타이완의 퀴어영화들이 가득했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넷북을 밟아서 물리적으로 이별하기 전까지, 그 넷북의 하드디스크에는 내가 합법적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영화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영화들이 최근 하나씩 개봉하기 시작했다. 나는 인생에서 영화관에 가장 많이 가는 시기를 살고 있는 듯하다.

 

<남색대문>의 한국 최초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나는 이 영화를 유튜브에서 구입하려고 시도했으나, 중국어(민난어?) 자막만 지원했기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사실 이 영화의 개봉이 정말 기쁜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 열심히 스크린에서 봐 두어서 대충 자막을 외워버리면, 나중에 유튜브에서 이 영화를 구매해서 마음 편히 볼 수 있겠구나! 그것도 자막을 읽는 수고를 들일 것 없이, 자막에 내 시선이 가는 일 없이 오롯이 화면만 즐기면서. 물론 이 개봉을 필두로 <남색대문>의 한국어 자막판이 판매된다면 더 바랄 것 없이 기쁘겠지만 말이다.

 

더구나 기뻤던 것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트위터 리트윗 이벤트로 예매권을 주셨다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니까 이런 행운도 오는구나! 나는 기쁜 마음으로 상영관을 검색했고, 오늘 이 영화를 두 번째 보았다.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두 번 이상 본다. 첫 번째에는 줄거리를 보고, 두 번째부터는 보면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을 따라간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생각도 함께 전개된다. 제일 처음 '꽂힌' 포인트를 영화 내내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번에 본 것은 등장인물들의 몸이었다. 몸과 몸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와, 몸을 잡고, 당기고, 밀치고, 부르고, 드러내고, 감추는 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 십대 시절의 몸들과 그 역동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 편한 친구, 어딘가 대하기 어렵지만 좋아하는 친구, 혼자서 경쟁심을 불태우던 라이벌, 그 애들과 가까이 있을 때 내 몸과 그 애들의 몸 사이에서 느껴지던, 설명할 수 없는 공기의 흐름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잠깐 되돌아왔다. 

그 때는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모든 일의 중심에는 내 몸이 있었다. 말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몸으로 말할 수 있었고 몸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비언어적 발화와는 다르다. 눈짓이나 몸짓으로 하는 대화가 아니었다. 그건 탁구공을 주고받듯 하는 대화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나 혼자서 구축하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만드는 세계였지만 때론 말보다 훨씬 쉽게 간파당했다. 나와 부딪히는 몸들은 내가 내뿜는 기류를 알아차렸고, 내게 되돌려 주기도 했다. 두 몸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화학작용은 가끔 말하지 않은 것까지 상대에게 내보여 주기도 했고, 오해를 일으키기도 했고, 어떤 때는 서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누군가 한 쪽이 입을 열 때까지 몸들은 서로 부딪혔고, 몸의 거리는 벌어졌다 좁혀졌다 했고, 우리는 계속 서로의 주변을 맴돌며 네가 먼저 말해, 네가 먼저 해, 하고 등을 떠밀었다. 지금은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수많은 말들을 그 때는 할 수 없었다. 너를 좋아해, 너를 싫어해, 네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해, 내가 여기 있는 게 불편해? 너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네가 날 좋아했으면 좋겠어, 너랑 친구하고 싶어, 넌 왜 나랑 같은 반이야? 

왜냐하면, 그 말을 하면 모든 게 변해버릴 것 같았으니까. 아니, 그 말을 하고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내 말이 불러올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도저히 지금 이대로는 있고 싶지 않으면서, 영원히 이대로 있고만 싶었으니까. 내 이야기를 모두에게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면 했다. 나를 세상에 펼쳐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으면서도, 그게 나라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했다.

 

영화 속의 멍커로우와 린위에전, 장시하오도 그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영화에서 세 명의 인물들은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 한 번 말을 하면,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어조를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감정을 드러내고, 서로의 몸을 부딪힌다. 한 명이 말하면 다른 하나는 침묵을 지키는 일이 잦다. 길게 이어지는 대화가 없는 자리를 여름이, 흐르는 시간이, 감정이 채운다. 

 

1. 춤추는 몸들

좋아하는 린위에전을 위해, 린위에전이 좋아하는 장시하오의 얼굴 가면을 쓰고 함께 춤을 춰주는 멍커로우

 

린위에전이 멍커로우의 이름으로 장시하오에게 쓴 편지를 바닥에서 긁어내는 멍커로우와 장시하오. 두 사람의 몸짓은 점점 춤에 가깝게 변해간다. 
바다에서 록밴드의 공연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멍커로우와 장시하오.

춤을 춘다. 서로의 몸이 닿을 듯 닿지 않고, 몸의 어떤 부분들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시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두 몸 사이의 공간이 변화한다. 공간 사이를 채운 것을 내 마음대로 여름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까. 햇빛이 밝게 들어오는 린위에전의 방에서, 싸움 구경이라도 난 듯 아이들이 복도마다 빼곡히 붙어 구경하는 가운데 바닥에 붙은 편지를 떼어내면서, 바닷가의 습한 바람과 피부에 달라붙는 모래알을 느끼면서, 둘은 몸을 흔든다. 

 

린위에전은 커다란 상자를 열고 물건들을 하나씩 꺼낸다. 장시하오의 몸에 닿았던 것들이 하나씩 나온다. 좋아하는 애의 농구공, 좋아하는 애의 신발, 좋아하는 애의 공책, 좋아하는 애의 펜, 좋아하는 애의 수경과, 그 애가 다 마시고 버려둔 물통. 린위에전은 장시하오의 수경을 쓰고 웃는다. 코와 입만 보이는 린위에전을 보며 멍커로우도 웃는다. 두 소녀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을 때, 그 사이에 넘실거리는 것은 순수한 즐거움이다. 그러나 수경을 벗은 린위에전은 우울해진다. 닿을 수 없는 상대의 물건들을 모으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그것들을 상자에 담고 꺼내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 말한다. 무릎을 껴안고 입술을 깨문다. 무릎과 턱이 닿게 몸을 동그랗게 말고, 그 몸은 멍커로우에게 말하고 있다. 내가 뿜어내는 우울은 너랑은 상관없는 거야. 네 것이 아니야. 나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 멍커로우가 말한다. 갈게, 린위에전이 말한다. 가지 마. 린위에전은 장시하오의 얼굴을 커다랗게 인쇄해 종이 가면을 만든다. 종이 가면을 멍커로우에게 씌우고, 발랄한 팝송이 흐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춤을 춘다. 처음엔 서로 몸을 흔드는 것으로 시작된 춤은 어느새 블루스로 변한다. 가면을 쓴 멍커로우가 얼굴을 린위에전의 어깨에 파묻고 있다. 좋아하는 여자애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웃는 얼굴을 그린 가면을 쓰고 있다. 카메라가 커다랗게 돌면서 린위에전의 몸을 감싼 멍커로우의 등을 클로즈업한다.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등. 누군가를 보호하는 것처럼 감싸안은 등. 가늘어진 눈과 커다랗게 벌어진 입으로, 밝게 웃는 얼굴을 하고서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포즈로 좋아하는 애를 껴안고 있는 멍커로우의 몸. 두 여자애의 몸이 밀착된 순간, 발랄한 팝 음악 속에서 두 소녀는 우울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애 대신 멍커로우에게 기댄 린위에전의 몸과 린위에전을 껴안기 위해 자신의 것이 아닌 얼굴을 쓴 멍커로우는 각자의 이유로 우울하다. 몸을 축 늘어뜨리고, 서로에게 서로의 우울의 무게를 실어 내리누른다. 대역을 붙잡는 사람과, 대역인 줄 알면서도 붙들리는 사람이 함께 돌아간다.

 

 

린위에전은 멍커로우의 이름으로 장시하오에게 편지를 쓴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장시하오에게 편지를 전달한 멍커로우는 다음 날 교장실로 불려간다. 편지가 학교 바닥에 붙어 있다. 두 사람은 편지 위에 물을 뿌리고, 자를 들고 편지를 긁어낸다. 그러다가 발로 편지를 문질러서 벗겨내기 시작한다. 마주보고 서서 발로 편지를 걷어찬다. 두 사람의 동작은 리드미컬한 춤처럼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편지를 내려다보면서, 전교생의 눈 앞에서, 두 사람의 몸 사이에서 유대감이 피어난다.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도, 두 사람의 움직임이 어쩐지 춤처럼 느껴져 슬몃 웃음이 난다. 참담하고 괴로운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몸은 춤추듯 경쾌하고 발랄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장시하오는 멍커로우에게 말한다. 나 꽤 괜찮은 앤데, 우리 사귈래? 멍커로우는 말한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두 사람 사이에 피어난 유대가 서로 다르게 해석된 듯하다.

 

 

멍커로우와 장시하오는 바다에 있다. 모래밭에서 록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가깝게 붙어서서 몸을 흔든다. 그러나 흔들리는 몸은 함께 편지를 떼어낼 때의 반만큼도 힘이 없다. 그저 그래야 하니까 몸을 흔든다는 듯, 두 몸 사이에는 긴장도 없고 끌림도 밀어냄도 없이 그저 심심하다. 나랑 있어서 재미없어? 장시하오가 묻고, 멍커로우는 답하지 않는다. 갑자기 장시하오가 수영을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장시하오가 멍커로우를 끌고 바다로 들어간다. 두 사람의 몸 사이에 다시 동세가 생긴다. 끌어당기는 사람과 버티는 사람. 함께 놀고 있다는 감각. 두 사람 사이에 생기가 돌아온다. 데이트는 놀이로 변한다. 서투른 연인은 즐거운 친구가 된다. 웃음이 터져나온다. 

 

2. 네 책상에 낙서한 애 누군지 알아.

 

편지가 바닥에 붙은 일 때문에 누군가 멍커로우의 책상에 낙서를 한다. "토 나와." 멍커로우는 그 낙서를 손으로 북북 지운다. 린위에전이 영어 시험범위를 물어보지만 멍커로우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린위에전은 다른 친구에게 가서 시험범위를 묻고 불평을 하지만, 멍커로우의 주위를 맴돈다. 화면 위로 신록이 푸르게 번진다. 여름의 가로수길을 걸으면서 린위에전이 묻는다. 너 정말 장시하오랑 사귀는 거 아냐? 아니라니까. 우린 그낭 친구야. 멍커로우는 걷는다. 린위에전은 걷고 있는 멍커로우의 주변을 돌면서 걷는다. 발걸음이 춤추는 듯이 발랄하다. 여름 오후의 햇빛 아래서, 한 마디의 말과 발걸음으로 소녀들은 화해한다. 

 

화해의 표시로는 역시 선물을 내밀어야 한다. 린위에전이 말한다. 나 네 책상에 낙서한 애 누군지 알아. 린위에전이 여학생 하나를 가리킨다. 쟤가 장시하오 좋아하거든. 장시하오를 좋아하면 내가 아니라 네 책상에 낙서를 했어야지. 분노한 멍커로우가 그 여학생을 향해 뛰어나가려고 한다. 린위에전이 멍커로우를 말린다. 린위에전은 멍커로우를 말리기 위해 멍커로우의 허리를 잡고 힘껏 멍커로우를 끌어당겨야만 한다. 멍커로우는 린위에전에게 끌려간다.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끌어당길 때, 그 끌림을 무시하고 분노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멍커로우는 아니다. 멍커로우의 몸이 린위에전에게 끌려가면서 두 사람 사이의 긴장 상태가 완전히 풀린다. 두 소녀는 웃음을 터뜨린다. 

 

3. 비밀 하나만 말해봐. 

 

비밀 하나만 말해봐. 한밤의 텅 빈 체육관. 멍커로우가 장시하오에게 말한다. 장시하오의 비밀 두 가지는 거절당하고, 마지막 비밀이 멍커로우의 기준을 통과한다.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의 비밀을 인정한다. 나도 내 제일 큰 비밀을 말해줄게. 그리고 멍커로우는 벌떡 일어나, 체육관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거기에 있어. 넌 거기 있어. 장시하오는 닫히는 문을 보며 말한다. 왜 그래? 어디 가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나아. 체육관 2층의 스탠드에 앉아서, 빨간색 난간 아래로, 한 층의 거리만큼 멀어진 장시하오의 몸을 내려다보며, 장시하오의 얼굴을 보는 대신 눈앞의 어둠과 그 위로 떠오른 자신의 무릎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난 린위에전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장시하오와 멍커로우의 몸은 서로 영향을 미치지 못할 만큼 멀리 있다. 멍커로우는 일부러 장시하오로부터 멀어진다. 온전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과를 보는 것이 무섭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첫 번째 커밍아웃은 그렇게 먼 거리에서 이루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지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거리에서. 거절을 당하더라도, 혐오를 당하더라도, 안전한 거리에서. 그렇게 몸들은 멀어진다. 오로지 말만을 전하고, 두려운 평가로부터는 멀어지기 위해서.

 

체육관을 나가는 멍커로우의 등 뒤에 대로 장시하오는 소리친다. 그럼 우리 헤어진 거야? 그럼 우리 헤어진 거야?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을 보이고 멀어지는 몸을 보며, 장시하오는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소리친다. 소리는 그 등에 맞고 되돌아온다. 그 순간에는 텅 빈 체육관보다 광활하게 멀고 아득한 등은 소리를 밀어낸다. 거대하고 텅 빈 몸의 침묵이다.

 

4.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모든 사람이 다 너 같은 건 아냐.

 

결국 장시하오에게 린위에전을 소개해준 멍커로우. 멍커로우는 한밤의 체육관으로 도망치지만, 장시하오는 멍커로우를 쫓아온다.

장시하오는 린위에전을 집 앞까지 바래다준다. 린위에전은 용기를 쥐어짜내 묻는다. 나랑 사귈래? 미안해. 장시하오는 멍커로우를 찾아가지만 멍커로우는 집에 없고, 그러자 장시하오는 체육관으로 멍커로우를 찾아온다. 무슨 행사라도 하려는지, 체육관에는 줄을 맞춘 접이식 의자들이 늘어서 있다. 멍커로우가 장시하오를 발견하고 묻는다. 린위에전은? 그 애 귀엽지 않아? 장시하오가 대답한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그리고 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한다. 팔을 뻗어서, 서로를 밀친다. 의자들 사이에서, 한 마디씩 치고 빠지는 공방처럼, 여기에는 남성은 여성을 때리면 안된다든가와 같은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대일의 사람으로서, 두 사람은 서로를 있는 힘껏 밀치고, 의자들을 쓰러뜨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서로를 향해 팔을 휘두른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나한테 원하는 게 뭔데? 장시하오의 말들이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닿아서 부서진다. 멍커로우는 굳게 입을 다문다. 몸들 사이에 격렬한 에너지가 오간다. 질문과 침묵 사이, 멍커로우가 말할 수 없는 것과, 장시하오가 진짜로 묻고 싶은 것과, 답을 알고 싶은 질문과, 답을 알고 싶지 않은 질문들이 두 사람의 몸과 몸 사이에서 에너지가 되어 뒤엉킨다. 

 

마침내 치열한 공방이 끝났을 때, 에너지가 소진되고 나자 두 사람은 소강상태가 된다. 장시하오는 원하는 대답을 얻었는가? 멍커로우는 왜 장시하오를 공격했는가? 두 사람은 무언가를 얻었지만,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장시하오는 말한다. 린위에전한테도 말했어? 멍커로우는 대답한다. 모든 사람이 다 너 같은 건 아냐. 이 말은 칭찬일 것이다. 결국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그 커밍아웃은 받아들여졌으니까. 하지만 장시하오에겐 그 말이 칭찬으로 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장시하오는 멍커로우를 좋아하니까. 침묵과 몸의 대화는 그렇게 끝난다. 

 

 

그리고 다음날 체육 시간에, 멍커로우는 린위에전에게 뽀뽀한다. 다음 순간, 린위에전은 일어나서 뛰어가버린다. 멍커로우는 그 자리에 남아서, 좋아하는 여자애가 멀어지는 것을 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뛰어가버리는 등은 가장 강력한 거부의 표시다. 멍커로우가 린위에전과 함께 앉아 있을 때, 린위에전의 몸을 향해 뻗어나갔던 멍커로우의 작은 화살표들,  작고 달콤하고 씁쓸한 스파크들은 그 순간 모두 사라져버린다. 멍커로우는 고독해진다. 린위에전의 몸은 멍커로우로부터 거리를 벌린다. 물리적으로 거리를 벌림으로써 두 몸 사이의 화학 작용을 물리적으로 차단해버린다.

 

그리고 농구를 하는 린위에전과 멍커로우가 있다. 린위에전은 다른 아이들과 웃으면서 대화하고, 멍커로우를 피해 움직인다. 움직이고, 공을 튀기고, 웃는 린위에전의 뒤로, 카메라는 표정이 지워진 말간 얼굴의 멍커로우를 선명하게 잡는다. 더 이상 자기를 바라봐주지 않는 사람의 등을 치열하게 뒤쫓는 눈은 소외된 사람의 눈이다. 여기에 있되 여기에 있지 않은 사람의 눈이다.

 

5. 밝고 단순하고 자유분방한 너처럼.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여름은 지나간다. 

수영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한 장시하오와 절친을 잃은 멍커로우는 공원에 앉아 이야기한다. 여름이 다 지나갔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네. 그래도 뭔가는 조금씩 남겠지. 그 남은 것들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들 거야. 

 

멍커로우와 장시하오의 몸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다시 한 번 부딪힌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달린다. 조금씩, 상대보다 반 페달 정도만 더 앞으로 나가면서, 내가 이겼다, 아냐, 내가 이겼다, 하고 말한다. 

 

신호가 바뀌고, 장시하오의 등이 멍커로우를 앞서간다. 멍커로우는 바람에 펄럭이는 장시하오의 하와이안 셔츠를, 햇빛에 바랜 것 같은 색깔의 셔츠를 바라본다. 그 등을 바라보며 하는 멍커로우의 독백은 이 영화의 유일한 독백이고,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주인공이 자신의 속마음을 행동이 아닌 말로 보여주는 순간이다.

멍커로우의 생각은 장시하오의 몸으로 향한다.

 

3년 후, 5년 후, 내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네 모습은 상상할 수 있어. 너는 아마도 남색 대문 앞에 서 있을 거야. 오후 3시의 햇빛을 받으며, 아직 여드름이 몇 개 남아 있는 얼굴로. 나는 너에게 다가가서 잘 지냈냐고 묻고, 그럼 너는 그렇다고 대답하겠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던 멍커로우는, 사실 장시하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신의 몸 역시 상상한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파트너와 만나고,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멍커로우의 몸은, 남색 대문과, 햇빛과, 햇빛 아래에 서 있는 장시하오를 감각한다. 그리고 장시하오에게 걸어간다. 장시하오에게 다가가는 다리의 움직임을, 발이 땅에 닿는 한 걸음, 한 걸음의 감각을, 흔들리는 양 팔의 느낌을, 잘 지냈냐고 묻는 목소리를,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모양을 느낄 것이다. 멍커로우는 장시하오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어떤 상상보다도 구체적인 상상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상상하지 않고, 그 때 그 장소에 있을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시간, 3년, 5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견뎌낼 것이라는 믿음이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는 되리라는, 그리고 그 어떤 무엇이 되더라도 여전히 너를 만날 것이고 너를 반가워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 믿음의 끝에는 내가 신뢰하는 네가 있다. 


S와 J와 집에서 놀았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J가 사온 마카롱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나중엔 만화를 봤다.
나는 S에게 <저주받은 아이>를 빌렸고 S는 다음에 우리 집에 와서 <무명기>를 마저 보겠다고 했다.

재미있었다. 즐거웠고 행복했다.

밀카는 본래 처음 보는 사람의 무릎 위에도 턱하니 올라가는 성격인데, 오늘은 방문객들을 경계했다.
간식은 받아먹지만 낚시놀이는 하지 않았다.
본래 반려동물들이 성체가 되면 그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편이 왔을 땐 애옹거리며 마중을 나갔고, 손님들이 없어지자 신나게 낚시놀이도 했다.

밀카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이 더욱 커지는 걸 느낀다.
아무나 좋아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온전히 나와 남편을 신뢰하는 게 느껴지는 고양이란.
밀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지켜주고 싶다.

 

날이 맑았다. 비가 온다더니 비가 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고, 하늘에는 굉장한 구름이 떠 있었다. 바닥에 그림자가 지고, 크고 둥글고,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적란운이었다. 이렇게 새파랗게 맑은 하늘에 곧 비가 쏟아질 거라니 믿기지 않으면서도 언제 비가 오려나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집에 돌아올 때까지 비가 오지는 않았다. 그림처럼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 신록은 선명하고 깊은 색이었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치마를 꺼내 입었고, 좋아하는 귀걸이를 했다. 이사하고 나서는 서촌이며 북촌이 가까워서, 가볍게 나들이를 가는 기분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 좋다.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 30분 정도면 도착한다.

 

교통수단을 잡아타기 위해 달릴 필요가 없고, 교통수단을 갈아타고 교통수단 내부에서 1시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약속장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빠지지 않는 기분을 생애 처음으로 느낀다. 아무래도 서울은 모든 게 정말 기괴할 정도로 밀집되어 있다. 경기도에 살 때와 서울에 살 때의 문화생활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데, 내가 살아보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의 삶은 얼만큼 불편하고 얼만큼 멀지 가까운 동네들을 찾아다닐 때마다 생각한다. 여기의 아름다움은 기괴하다. 정상적이지 않다. 아주 많은 것들이, 작은 박물관과 수많은 옛 터와 유서 깊은 커피하우스와 대형 서점과 호밀빵을 파는 빵집이 지하철역 네다섯 개 안에 빽빽하게 들어 있다. 서울은 서울이라고 불리기도 전부터 이미 서울이었어서, 모든 것이 몰리고 몰려 있다. 운이 좋게 여기에 집을 구해서 나는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는데, 만일 내가 여기가 아닌 곳에 있다면 이럴 수 없을 텐데, 그런데 내가 다른 곳에 있더라도 거기서도 이런 것들을 누리는 게 당연하게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호주에 갔을 때 나는 아델레이드라는 작은 도시에 머물렀다. 얼마나 작은 도시였냐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공짜 트램을 타고 도심에서 30분이면 바다에 갈 수 있었고, 도시에 극장이 하나밖에 없었고, 시내의 가게들은 저녁 6시면 문을 닫고 금요일에만 8시까지 영업했다. 나중에 친구의 호주인 남자친구에게 아델레이드에 있었다고 했더니 "AH, the city is boring"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도시의 극장에서는 뮤지컬 <고스트>를 상영하고 있었고, 상영 예정작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역사극이 그 해 초순부터 하순까지 줄줄이 공연될 예정이었다. 우리가 제목을 익히 아는 작품들도 아니고, 전공자나 되어야 읽어봤을 것 같은 역사극들을. 한국에서 공연되는 작품의 지방 공연이 아주 적고 극장 시설이 열악해서 무대 배치를 바꾸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라운드시소에서 하는 요시고 사진전을 보러 가기로 했던 건 트위터에서 우연히 포스터를 봤기 때문이었다. 한 장의 사진이었다. 한 사람이 수영을 하고 있는, 맑고 투명한 물 사진. 나는 바다 예찬론자다. 나는 물을 사랑한다. 개울가에 오래 앉아 있고, 다리 위에서 한 시간 동안 강물을 내려다보아도 질리지 않으며, 해안도로를 굽이굽이 달리는 여행길을 굳이 선택하느라 내비게이션에게 오 분마다 한 번씩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한다. 호주에서 가장 좋았던 건 매일 바다에 갈 수 있다는 거였고,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센 강의 야경을 볼 때였다.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단수이에 매일 갈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타이베이에 살기를 꿈꾸고, 신혼여행으로 갔던 제주도에서는 밥 먹는 시간과 말 타는 시간을 빼고는 바다를 보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게다가 날씨는 덥고, 서촌은 가깝다. 한 시간이나 줄을 서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기꺼이 갈 생각이 있었는데, 아침형 인간인 남편이 나를 제때 깨워 내보낸 덕분에 30분 정도 대기 후 들어갈 수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오픈 시간보다 1시간 일찍 가도 30분 정도의 대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근처에 그늘이 많고 건물이 아름다워서 기다리는 게 지루하지는 않다. 무작정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따로 마련된 티켓부스(파란색 카패)에서 티켓을 발권한 후 대기번호를 받고 입장 시간이 되면 카카오톡으로 알려주는 방식이어서, 주변의 건축물이나 그늘을 잘 찾아서 기다리면 된다. 건물이 아주 예쁘고, 중정도 있다. 중정에는 얕은 연못도 있어서, 사진이 잘 나온다.

 

건물이 예쁘다.
중정에 그늘도 있고 예쁘다. 현대적인 건축물인데도 내가 좋아하는 고전적인 요소가 있어서 좋다.
저 위에 가로지르는 부분은 4층을 가로지르는 다리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막상 4층에 올라가 보니 그냥 지붕 위로 뻗은 기둥이어서 실망했다.

 

전시장은 당연하지만 전시에 맞게 꾸며져 있다. 요시고의 사진 중에 유명한 것이 마이애미에서 나란히 늘어서 있는 오렌지색 의자를 찍은 것인데, 그래서인지 전시장 내부 인테리어도 쨍한 오렌지색으로 되어 있어 팝하고 귀엽다. 전시는 2층은 건축물 사진, 3층은 각 도시의 여행사진, 4층은 바다와 관광객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층을 떠나면 재관람은 불가능하다.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올라가는 계단은 나선형인 반면 내려가는 계단은 일자형이다. 전시장 인테리어는 좋은데, 올라가는 계단의 난간이 튀어나온 형태가 아닌, 벽을 파내는 형태로 되어 있어 당황스러웠다. 벽을 파내고 그 안에 조명을 설치하여 이것이 난간임을 알리게 해놓았는데, 눈에 띄기가 일반 난간보다 훨씬 어려워 난간을 이용해야만 계단을 이용할 수 있는 사용자층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요시고의 사진은 빛, 조형, 균형을 기본 테마로 하는데, 그래서 역동성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반면 정적인 형태감과 균형감에서 오는 시각적 만족스러움과 빛이 더하는 특유의 색조가 주는 안정감이 좋았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3층의 여행 사진과 4층의 바다 사진들 중에서도 "산 세바스티안의 바다" 코너였다. 3층에서는 마이애미와 올랜도(디즈니랜드)의 사진들이 좋았는데, 사계절 내내 햇빛이 내리쬐는 동네여서 그런지 가건물을 포함한 건물들이 다양한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색이 바래서도 여전히 그 색조가 팝, 하고 튀어오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마이애미는 그런 곳인 듯했다. 요시고의 사진 속의 마이애미에선 수많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거쳐간 익숙하고 낡은 곳조차도 여기의 가장 밝고 빛나는 곳보다 더 발랄하게 튀어오르고 있었다. 

 

 

이외에도 부다페스트의 스파, 두바이의 사막, 스페인, 일본의 도쿄와 교토 등을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도코의 사진들을 보고 남편은 "내가 아는 도쿄는 이렇지 않은데."라고 말했고 나는 "내가 아는 도쿄는 꼭 이런데."라고 말했던 것이다. 남편은 자기가 가 본 도쿄는 좀 더 현대적이었다고 했다. 어쩌면 서구권 거주자의 오리엔탈리즘이 묻어 있는 사진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봤던 도쿄, 작은 식당에서 바 자리에 앉아 튀김우동을 먹는 그런 도쿄를 보았다.

 

두바이의 사막 사진을 전시해둔 곳에는 바닥에 모래를 깔아두어 사막 느낌이 나게 배치했다. 정말로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전시의 여러 면이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느꼈는데(작가도 인터뷰에서 소셜 미디어용의 정사각형 사진의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분명 인스타그램에 내보이기 좋은 전시이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방식으로 큐레이팅되어 있으며 작가의 컨셉도 그러하고, 전시의 기획 의도도 코로나 19가 진행 중인 현대인들의 삶에 휴식을 주고 싶어서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충실하게 잘 만든 전시이고, 그 전시에 잘 맞는 공간이다. 4층짜리, 중정이 있는 둥근 건물. 도넛형의 건물은 요시고가 찍는 특이한 조형의 건물들과, 특정한 순간에 완전히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건축물들과 잘 어울린다.

 

그래도 제일 좋았던 것은 역시 마지막 4층에 있는 바다 사진들이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청량해지는 파도 사진, 바다 사진, 해변 사진들이 있었고, 관광객들이 있었다. 요시고는 관광객들은 "풍경을 보는 것을 방해"하며, "풍경을 즐기기보다는 어디에 있는지를 주변에 알리는 데 더 관심이 있"지만, 자신도 관광객이라는 걸 잊지 않으며 관광객이 있는 풍경들을 균형감 있게 담아내려고 했다고 적었다. 과연 그의 의도대로 사진 속에서 관광객들은 정말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어서, 관광객들이 사진 속 풍경의 일부가 되고 사진의 생동감을 만들면서도 사진의 피사체로는 잡히지 않았다. 풍경으로 유명한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을 피해서, 또는 관광객들을 넣어서 사진을 찍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절묘한 균형감이 얼마나 찾기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사진에 감탄하면서도, 요시고가 "풍경을 즐기기보다는 어디에 있는지를 주변에 알리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말한 것에는 반발심이 생긴다. 그러기에는 그의 사진 속에서 사람들은 너무 잘 놀고 있었고, 그 순간의 햇빛과 물을 즐기고 있었고, 무엇보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았다. 나 역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기보다는 그 순간의 풍경을 마음 속에 담아두길 즐기는 여행자로서, 작가의 그런 속단이 서글펐다.

 

 

그리고 산 세바스티안의 바다 코너가 있었다. 산 세바스티안은 요시고가 자란 해변 마을로, 산 세바스티안 특유의 슬프고 부드러운 노래를 따로 지칭하는 명칭이 있을 정도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이끌어내는 도시라고 한다. 그가 찍은 산 세바스티안의 바다는, 마치 드론을 이용해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해변의 위아래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산책로 덕분으로 렌즈만 바꾸어 가며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나는 산 세바스티안의 바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걷는 사람들, 물이 빠진 해안가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있는 소년들, 따뜻하면서도 슬픈 노을의 색감이 좋았다. 스페인에 간다면 산 세바스티안에 머물고 싶다. 드론으로 찍은 것 같은 사진을 가능하게 한다는 그 산책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직접 보고, 비치 타올을 펴고 파라솔을 꽂는 대신 가만히 산책을 하거나 서핑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싶기도 하다.

 

청량하고 시원한 관광객-바다 코너를 지나 왠지 좀 울림통이 큰 금관악기를 불어야 할 것 같은 산 세바스티안 코너로 들어오니 새삼 내가 좋아하는 바다는 역시 수영장 같은 바다가 아니라 이런 풍경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수영장 같은 바다의 청량함도 멋지지만, 바다는 그냥 있을 때, 되도록 적은 사람의 것일 때, 즐거운 비명과 웃음보다도 가만한 시선과 긴 응시 속에 있을 때 더 아름답다.

 

시간이 된다면 한 번 더 가서 보고 싶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바다 사진만 한 시간 동안. 그래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은 예전에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영화의 결말에 대한 한 마디뿐이었다. 푸이가 어릴 적 키우던 귀뚜라미를 어른이 되어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고.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어릴 적 키우던 귀뚜라미가 든 통을 꺼냈는데 귀뚜라미가 아직 살아 있더라던. 그 귀뚜라미는 그 긴 세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에 나오는 귀뚜라미 같은 건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늘 저녁으로 가지와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중국식 라유간장소스로 만든 덮밥을 한다고 했더니 남편이 마침 중국사 공부 중이라며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보게 되었다. 딴 얘기지만 만능라유간장소스는 정말 맛있고 간단하다!(알려주신 트위터의 햅쌀님께 감사합니다) 볶음을 만들어놓고 보니 너무나 맥주 안주라 남편에게 퇴근길에 맥주를 사다 달라고 했다.

 

기름에 담근 가지는 정말 맛있다!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벽은 감독이다... 그렇다. 베르톨루치 작품이다. 영화에 대해 정말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도입부를 보다가 베르톨루치 이름이 나오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나 혼자였다면 급하게 백스텝을 밟았을지도 모르지만 남편이 있어서 일단 끝까지 봤다. 범죄자의 영화를 팔아주지는 말자는 게 원칙이지만... 한때 <몽상가들>을 좋아하는 영화 상위 랭크에 언제나 넣곤 했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갈등하게 된다. 그냥 눈 딱 감고 보면, 내 취향일 게 분명하니까.

 

아무튼 영화가 시작되었고, 나는 운이 좋게도 중국사를 공부하고 있고 대략적인 연표를 외우고 있는 사람을 옆에 앉힌 채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건은 기억해도 숫자는 귀신같이 지워내는 머릿속의 지우개를 가진 사람으로선 행운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군복 차림의 중국인들만 나오면 "지금 문혁이야?"라고 물어댔고, 남편은 지금은 군벌인 것 같고, 저건 국민당 표식이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줬다. 그 이야기 끝에 나는 마오쩌둥이 집권하자마자 문화혁명이 시작되었다는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중국 군벌 시대란 정말 개판이어서 망한 나라의 황제도 일단 자금성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가 작은 나라라서 가능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영화의 마지막이자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가 죽는 연도인 1967년이 문화혁명의 해라는 걸 배웠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장 짙게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푸이가 문화혁명의 해에 죽어서 다행이다. 직업을 가지고 그때까지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햇빛이 맑은 날, 그게 영령이든 뭐든, 마지막으로 자금성의 태화전에 가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오랜 세월을 버텨낸 귀뚜라미가, 색깔이 거무죽죽하게 변한 귀뚜라미가, 모든 것을 버텨내고 그때껏 살아온 푸이의 인생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푸이가 그때 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문혁 때 그가 살아있었다면 당했을 수도 있는 수많은 고초들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중국의 근대사를 꿰뚫으며 시대에 휘말려 살아온 사람이, 죽을 때만은 그래도 가장 힘든 길은 비껴나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영화는 중국 근대사 공부용 영화로 아주 좋았다. 물론 색감이나 구도는 말할 것도 없이 좋다(베르톨루치 영화니까 당연하다... 젠장). 세 살에 청의 마지막 황제가 되어, 여섯 살에 청나라가 망했지만 자신이 더 이상 황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청소년이 될 때까지 몰랐던 사람. 그가 전범이 되어 수용소에 갇히고 자백문을 쓰고 형기를 채울 때까지, 그의 삶은 타의로 정해지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가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없었고,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한 것조차도 일본의 제국주의 놀음에 놀아난 것에 불과했다. 

 

당연한 일이다. 황제로 자라고 황제로 키워졌으므로. 세 살에 황제로 즉위한 뒤로 푸이의 세상은 자금성에 한정되었는데, 자금성 밖 세상을 볼 기회도 주어지기 전에 자금성 밖의 질서는 완전히 변해버렸고, 푸이는 새 질서를 배우기에는 너무 커버렸다. 세상은 한때 황제였던 이를 반기지 않았고, 양육자들은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도 없이 그를 떠났다. 푸이에게 다행인 점은 영국인 가정교사를 들여 신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으나, 푸이는 배운 것을 모두 자신이 "황제로 돌아가는 데" 쓸 궁리밖에 하지 않았다. 푸이는 영국인 가정교사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외국의 황제들은 어떻게 암살을 당하는지, 자신이 다시 황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만약 그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서 살고자 했다면 극의 전개는(그리고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만주국 황제가 되어 일본의 꼭두각시가 되는 대신 차라리 어디서 상인이라도 하려고 했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푸이는 변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끝까지 황제로 살아야만 했고, 황제로 사는 것이 완전히 좌절되자 죽음을 택하려 했던 사람(물론 그의 자살은 타인에 의해 저지된다. 그의 모든 삶이 그랬듯이).그 점이 극중 푸이의 매력이다. 나는 변할 줄 모르는 캐릭터, 변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 버리는 캐릭터를 사랑한다. 내 안에 그런 고집쟁이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남아 있어서 그런 캐릭터를 보면 쉽게 동질감을 느낀다. 푸이는 세 살에 궁에 들어오자마자 어머니와 떨어졌고,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나는 황제이므로 뭐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에 집착했다.

 

무엇인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푸이의 인생 전반을 지배한다. 모든 문은 푸이의 앞에서 닫히고, 푸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망연자실하게 떠나보낸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번의 달리기 씬이다. 어린 푸이가 유모의 가마를 쫓을 때, 또 만주국의 황제인 푸이가 황후의 마차를 쫓을 때. 푸이는 이미 출발한 두 사람을 전력으로 달려 뒤쫓지만, 거대한 붉은 문이 푸이의 앞을 가로막는다. 문은 푸이의 면전에서 닫힌다. 푸이는 갇힌다. 타의가 푸이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할 때, 그것은 단순한 가택연금이 아니다. 한 사람을 집에 가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그 집 안으로 한정한다는 의미다.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질서가 그 문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푸이가 가난한 어린 여자애였다면 훨씬 끔찍한 일들이 닫힌 문 뒤에서 벌어졌겠지만, 푸이는 장성한 남자였고 명목상이나마 황제의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문 안에서는 그는 최소한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일시적인 기분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성인기 이후 푸이의 삶은 늘 그랬으리라 짐작해본다. 모든 것을 손안에 쥐고 있다는 아주 일시적인 기분, 단순히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내무대신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사라지는 그 연기 같은 기분을 손안에 쥐고 삶의 나머지 시간을 버텨왔던 것이 아닐까.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고,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은 황제라서 이 문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된다는 생각. 

 

전범재판을 받을 때 푸이는 만주국에서의 시간에 대해 "돈을 아주 많이 썼고, 피아노와 시계 같은 것들을 샀다"고 한다.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에 망한 나라의 권력자가 서구 문물을 수집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을 갈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소비자일 때는 어떤 사람이든 존중받는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망한 나라의 이름뿐인 위정자는 그런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정체성이나 결정권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무리 두꺼운 허울이 덮여 있다고 해도, 결국 자신을 향한 무시와 악의는 희미하게나마 감지되기 마련이니까. 피아노와 시계 같은 것. 정교한 기계장치들과 아름다운 음악. 그런 것에 파묻혀 있으면 그저 한량이 될 수 있다는 꿈도 마냥 허황되게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 돈을 펑펑 쓰며, 무도회에 참석하고 술을 마시는 그 시간들이 푸이에게는 보상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청이 망한 것에 대한 - 자신은 청의 멸망에 아무것도 기여한 바가 없는데도 청의 멸망으로 인하여 가장 큰 피해를 본 피해자니까 - 일시적인 보상으로. 

 

푸이는 아편을 극도로 혐오한다. 푸이의 어머니가 아편을 먹고 자살했는데도, 마지막까지 푸이의 편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사람인 황후는 아편을 피우는 것으로 자신을 배신한다. 황후가 아편을 피우는 이유는 짐작할 만하지만 - 황후에게는 허울 뒤의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너무나 잘 보였으므로 - 푸이는 그것을 전혀 모르거나 모르는 척한다. 그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변할 수 없는 사람. 문제가 생기면 타인과 바깥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 황제라는 허울에 매여 일본의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아편을 피우는 황후에게 분노를 돌리는 사람. 그는 전범재판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 전에는 동생과 서화를 배우며 자신의 권력을 확인시키기 위해 내관에게 먹물을 마시게 하는 청소년기의 아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황후까지 자신의 곁을 떠나며 푸이는 처음으로 혼자-됨을 맛보았을 것이고, 아무에게도 자신을 의탁할 수 없는 그 혼자-됨이 푸이를 성장시켰다. 그래서 푸이는, 수백 명의 죄수들 가운데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모자를 쓰고 서 있을 때에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안경 속 그의 눈이 가장 빛날 때는 전범재판을 받을 때, 그리고 형기를 마치고 나올 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있다. 푸이가 자신의 자리 - 황제의 자리 - 로 돌아가려고 할 때, "거기는 가면 안 돼요!"라고 저지하는 아이가 있는 장면. 푸이는 다시 한 번 자신이 황제임 - 황제였음 - 을 증명해보라고 요청받는다. 자신의 형제가 증명을 요구했을 때는 내관에게 먹물을 마시게 할 수 있었지만, 지금 푸이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푸이는 자신의 비밀을 하나 꺼내 보여준다. 오래전 자신이 이 자리에 앉았을 때, 귀뚜라미를 숨겨둔 곳을 뒤져 통을 꺼내 보인다. 그 오랜 세월, 푸이가 견뎌온 시간 동안 귀뚜라미는 같은 장소 - 푸이의 대전 보료 밑 - 에서 같은 시간을 견뎌 왔다. 비밀이란 어쩌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나를 따라 다니는 것, 나와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비밀이라고 부를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쉬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변한다. 나와 함께 시간을 맞기 때문이다. 비밀이란 이따금 와서 꺼내볼 수 있는 고정된 장소에 있는 것들만을 가리키는 명칭일지도 모른다. 오래된 집에 있는, 아이들의 키를 기록한 낙서 같은 것 말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장소는 고정된 것이라, 푸이가 60년 후의 자금성에 왔다고 해도 푸이의 눈에 담긴 자금성은 60년 전의, 자신이 세 살 때의 그 공간일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래된 비밀을 꺼내서, 그것이 아직도 건재함을 자랑할 수 있는 공간. 

 

영화의 마지막, 푸이의 회귀는 그 푸진 세월을 겪고도 푸이의 마음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세 살 꼬마를 깨운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비밀을 하나 간직하고 있는 한 여전히 자금성의 태화전은 "푸이의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 새로운 정부가 자금성을 들어엎고 관광지로 개발하고 경비원을 세우면서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귀뚜라미가 거기에 있는 한, 그 장소는 여전히 푸이에게 고유명사로 지칭된다. 

 

그러므로 푸이가 자신의 귀뚜라미를 꺼내 주는 행위는 경비원의 아들에게 "자신을 증명" 하는 일인 동시에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타인에게 건네주는 행위"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신 건네줌으로써, 푸이는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손으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내준다. 이때껏 푸이의 인생이 계속해서 타의에 의해 조종되었다면, 이 장면에서 푸이는 자의로 자신의 증명을 타인에게, 그 때의 자신과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아이에게 넘겨준다. 여기서 푸이가 그 귀뚜라미를 처음 받았을 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푸이가 귀뚜라미를 발견하자, 그것을 들고 있던 신하가 말한다. "저와 함께 먼 길을 여행해 온 귀뚜라미입니다. 따뜻하게 해주려고 품고 있었지요. 이제 폐하의 것입니다." 귀뚜라미를 건네주면서 푸이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오랜 세월을 버텨 온 귀뚜라미다. 고초를 겪지 않게 해주려고 보료 안에 숨겨두었다. 이제 네 것이다."

 

그렇게 자금성은 비밀을 잃고, 보통명사로 전락하고, 푸이의 보물은 소년의 손으로 넘어가 언젠가 "내가 청의 마지막 황제를 보았다"고 시작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야기는 아래로 흐르고, 푸이의 고집스러운 황제-되기는 이야기를 승계하며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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