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책을 보내주셨다.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단편소설들을 모은 책으로, 2005년에 출간되었다가 16년만에 재출간되었다.
표지 제목에 쓴 사파이어 빛깔의 파란색 홀로그램박이 예쁘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그려진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책을 받고도 조금 어리둥절했다. 분명 책을 받고 싶어서 서평단 신청을 했지만, 청소년이 아닌 내게 기회가 올 거라고 믿지는 않았다. 어느 날 현관 앞에 도착한 분홍색 봉투는 선물 같았다. 크리스마스 즈음 도착한 선물.

단편소설집은 늘 선물 같다. 집게로 집어 봉지에 담아 무게를 달아 파는 사탕 같다. 서로 다른 맛의 사탕들이 한 봉지 안에 담겨 있다. 긴 지렁이 젤리의 겉에 묻은 새콤한 가루가 강낭콩 젤리와 복숭아맛 사탕에 묻기도 하고, 각설탕 모양의 사탕들이 서로 들러붙기도 한다. 특히 한 사람의 단편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모은 단편집일 때 이런 느낌이 더 잘 난다.
서로 다른 문체와 소재들이 모여 있을 때는 눈을 감고 봉지 속 사탕을 하나씩 꺼내는 것 같다. 매번 무슨 맛일지 궁금해하고, 새롭게 놀라면서.


귤과 커피를 준비하고 읽기 시작했다. 첫 작품은 표제작 <앰 아이 블루?>('엠'이 아니라 '앰'인 데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파란 하늘이나 블루베리나 수영장 물 같은 파란색에 대한 이야기. 귀엽고 유쾌했다. 게이에 대한 학교 폭력 이야기는 어둡지만 그 이후를 잘 풀어냈고, 마지막의 반전이 상큼하다.

다른 모든 이야기들도 좋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두 번째 이야기, 신디와 '나'의 이야기였다. 수녀원 기숙학교에 다니는 두 여자아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이야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무한한 자유가 내게도 느껴져 기뻤다.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의 공통점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지점은,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심리를 잘 풀어낸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단순히 게이이거나 게이가 아닌 상태, 혹은 디나이얼의 상태에 대해서 다루는 작품도 있지만, 퀴어성 자체에 대해, "아직 몰라도 되"며 어쩌면 영원히 정의하지 않는 상태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 많이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첫 순간'에 대한 작품이 많이 있는데, 자신이 누구에게/무엇에 끌리는지 알게 되는 첫 순간의 강렬함을 말하고 있다. 혼란스러움이 시작되는 지점, 자신의 몸과 마음이 불화하기 시작하는 지점, 타인에게만 보이던 자신의 어떤 부분을 자신이 직시하게 되는 첫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좋다.

용감한 이야기들도 있다. 커밍아웃에 대해, 수용과 불화에 대해, 수용적이거나 그렇지 못한 가족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는 짧아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거나 압축한다. 그 사이를 꿰어맞출 실이 되는 건 독서경험에서 꽤 즐거운 일이다. 특히, 불행한 닫힌 결말로 끝나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아마 이 부분이 이 책을 엮은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일 것이다. 불행은 상태일 뿐이라고. 언젠가 수용되리라고, 혹은 수용과 관계없이 행복해지리라고. 행복하지 않더라도 아직 잘 모르더라도 배제와 배척을 당하고 있더라도 상황은 나아질 수 있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시 책에 나오는 한 소녀처럼) 집을 떠나서, 자신에게 불행한 곳을 떠나서 새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고.

이 책의 모든 이야기는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어떤 방향으로 발화할 수 있는 가능성, 나의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을 알게 될 가능성, 자신에게 수용적이고 더 나은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가능성, 소중한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그들의 지지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무엇보다도 불안정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아쉬운 지점은 이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모두 서구이고,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7-80년대가 다수로, 22년에 한국에서 읽기에는 다소 이해가 어려운 지점들이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공간적 배경이 주는 어려움을 뚫고 모두를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많고, 특히 여전히 생존의 위협에 내몰릴 가능성이 큰 - 가족에게서 쫓겨나거나 불화하는 퀴어 청소년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아주 많다 - 한국 청소년 퀴어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다가가는 지점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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