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힘이 나고 있다. 에너지가 되돌아오고 있다. 행동과 행동 간의 간격이 줄어들고 행동들을 연달아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다녀와서 바로 발을 씻고, 식재료를 다듬어서 오븐에 넣고, 샤워를 하고, 바로 몸과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액세서리를 고르는 일을 중간에 쉬지 않고 물 흐르듯이 해낼 수 있다. 그 덕분에 오늘은 상담 시간보다 일찍 가서, 근처에 있는 늘 가보고 싶었던 커피하우스에 갈 수 있었다. 에스프레소와 아몬드 비스킷이 맛있었다.

 

행동을 연달아 할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다. 예전의 나는 샤워를 하고 나면 30분이나 1시간씩 침대에 늘어져 있었고, 행동을 하기 전에는 멍하게 있는 시간이 오래 필요했다. 행동 여러 가지를 물 흐르듯 할 수 있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늘 지각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시간 관념이 모자라서였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갈 준비하는 데 쓸 에너지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을 연달아 하고, 시간차 없이 여러 일들을 하는 날들이 더 많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언제쯤 이것이 신기하게 여겨지지 않고, 이렇지 않았던 시절을 잊게 될지 궁금하다. 행동을 연달아 할 수 있다고 느껴진 게 사흘 정도 된 것 같은데, 이런 날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성취감이 생기고, 앞으로도 계속 행동을 연달아 하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나는 걸 느낀다. 

 

그리고 이 안정감을 해치는 행동을 되도록 하고 싶지 않다. 소모적인 행동을 해서 힘들어지고 싶지 않다. 예를 들면 사람들과 싸우는 것.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것.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숨기는 것. 계속 생각하거나 신경써야 하는 일을 만드는 것. 다른 사람의 알 수 없는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고 짐작해서 그에 맞는 대응을 생각해내는 일. 그런 것들을 하고 싶지 않다. 직구로 말하고, 상처받을 것을 미리 걱정하지 않고 싶다. 이 안정감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고, 그걸 위해서 어떤 다채로움을 포기해야 한다 해도 그렇게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도 신기한 일이다. 예전의 나는 그 다채로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너무 무서워서 지레짐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걸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게 신기하다. 예전에는 누가 옆에서 그러면 된다고 해도 어떻게 그래...? 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상담에서 말할 것을 미리 적어놓게 된 것도 행동이 유연해지고 빨라지면서 생긴 변화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귀찮아서 그러지 못한 적이 많았다. 요즘은 상담에서 말할 것을 미리 적어두고, 연극 감상도 빨리 적고, 무엇보다 소설에 대해서 많이 적는다. 쓰고 있는 소설에 넣을 만한 것이 생기면 바로 휴대폰에 메모한다. 이런 습관을 예전부터 들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상담에서는 대부분 내 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구. 존중받지 못한 욕구. 좌절된 욕구 등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나의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더 멀리까지 나가게 됐다.

 

힘이 조금 생기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남편과 사는 삶에 크게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순간도 있고, 잔잔하게 안정적이고, 삶이 잘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내 원가족 자원이 좀 더 안정적이었다면, 원가족과의 삶이 내게 더 나은 환경이었다면, 내가 원가족으로부터 억압당하고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을까? 

 

결혼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스트레스들 - 시가 방문이나 이벤트 참여 등 - 과 결혼으로 인해 생기는 생각과 행동의 제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남편은 나와 고양이를 먹여살리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결혼 전에 함께 외국에 나가 살기로 약속했었는데, 여전히 그것은 가능한 이야기지만 왠지 결혼하기 전보다는 더 멀어 보인다. 자유를 제약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나는 여성과 연애를 해보고 싶었는데, 딱히 특정 여성과 연애를 하고 싶은 상태는 아니며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원가족 자원이 내게 좀 더 호의적이고 나를 좀 더 풀어줬다면, 나는 지금 결혼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여성과의 연애를 해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보지 못한 길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무엇보다 정상성에 너무 쉽게 포함되고 말았다는 생각에 괴롭다. 나는 어쩌다 보니 사회적으로 결혼적령기라고 생각되는 나이에 결혼을 했다. 정상가정에서 자라 정상사회에 편입되었다. 물 흐르듯 모든 과정이 진행되었고 나는 계속해서 질문하게 된다.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이었나? 내가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원했나? 나는 일반인과 다르고 싶었다. 특별한 삶을 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는 것을 시도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 주변의 누구보다도 가장 정상성에 부합하는 일을 하고 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 안에 두 가지 욕구가 다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상성에 반항하고 싶은 욕구와 정상성에 부합하고 싶은 욕구 두 가지가  다 있는 것 같다고. 처음에는 부정했다. 선생님은 종이에  줄을 긋고, 한쪽에는 내 반항적인 욕구에 대해, 다른 쪽에는 정상성에 포함되고 싶은 욕구에 대해 적어보자고 했다.

 

반항적인 욕구:

나는 결혼적령기를 맞아 "당연한 수순처럼 보이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외국에 나가 살아보고 싶었다. 나는 여성 애인을 만나보고 싶었다. 나는 독립하고 자립하고 싶었다. 나는 두 가족에 포함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양쪽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그들을 평생 보지 않고 살고 싶었다. 나는 가정주부와 같은 삶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현재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싫다.

정상성에 포함되고 싶어하는 욕구:

결혼적령기가 늦어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너무 빨리 결혼한 것이 아닌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한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는가? 내가 돈을 벌지 않고 입시를 새로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두렵다. 내가 이런 상태로 계속 있어도 되는 것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같은 나이에 결혼한 다른 커플들에 비해 우리는 어딘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혹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선생님은 내 반항적인 욕구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형태로 표현되는 반면, 정상성에 포함되고 싶어하는 욕구는 불안이나 의심의 형태로 발현된다고 했다. 그리고 정상성에 포함되고 싶어하는 욕구도 내 안에 있는 욕구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보다 잘하고 싶은, 정규분포표 안에서 평균이나 그 조금 위에 있고 싶어하는 욕구는 윤리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고, 그런 욕구를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 편해질 거라고 했다. 나는 그런 욕구를 가진다는 게 너무 속물적인 것 같아서, 그런 속물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걸 스스로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주의 과제는 이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속물이 되지 않기다.

 

오늘 들었던 말 중에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사람들은 늘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고 노력하고, 내린 결정이 최선이 아닐까 봐 두려워하는데, 실제로 결정은 1과 100 사이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49와 51 사이에서 고르는 거라고 한다. 사람의 성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 성향 안에서 이뤄지는 결정은 실제로 크게 다르기 어렵다고 한다. 2 정도는 있으면 좋은 거고 없어도 앞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니까, 이미 내린 결정을 곱씹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고 앞으로 어떻게 행복하게 살지 생각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후련하면서 슬픈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내가 생각하는 용감한 삶을 살 기회가 없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 용감한 삶은 내 성향과는 맞지 않아서 내가 평생 누릴 수 없고 그저 바라보면서 갖고 싶어하기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한편으로는 어차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선택은 모두 그 상황에서의 최선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후련하다. 우울하고 불안한 상태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결정을 많이 내렸지만 그것은 그 상황에서 주어진 51이나 49 중에 하나였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다른 쪽이었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과거의 선택을 곱씹는 마음을 죽이는 데 조금 도움이 된다.

 

과거에 대해서 가능한 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미래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내가 앞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내게 올 수 있는 기회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다. 그 기회와 성취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내게도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과거에 못했으니까 앞으로도 못할 거라는 생각만은 안 하고 싶다.

 

괜찮아질 것이다.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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