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중국, 대만, 홍콩 등이 좋고, 그 나라의 이야기를 읽고 싶고, 그 나라의 거리를 걷고 싶다. 집에서는 주로 중국 가정식을 해 먹고, 중국 시골에서 직접 채취한 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 유튜브 영상이나 미국인을 대상으로 영어로 하는 대만 요리 유튜브 계정들을 열심히 보고, 중국차를 마시고, 송나라와 당나라와 청나라에 대해서 조금씩 공부한다. 넷플릭스 "나의 추천" 탭에는 언젠가부터 중국, 대만, 홍콩의 영화와 드라마가 줄줄이 뜨고 있다.

 

<청두, 혼자에게 다정한 봄빛의 도시에서>를 읽어보려고, 왠지 이 책은 서점에서 집어들어야만 어울릴 것 같아 다음에 서점에 가면 사야지, 하는 사이 리디셀렉트에 이 책이 올라왔다. 그래서 우선 전자책으로 접하게 됐다.

이 책은 내내 이동하면서 읽었다. 버스를 타고 나갈 때마다, 버스카드를 찍고 자리를 잡고 앉으면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서 이 책을 폈다. 나는 운동할 때 읽는 책과 쉬는 시간에 읽는 책과 잠자기 전에 읽는 책처럼, 용도를 나눠두고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곤 하는데, 이 책은 움직일 때 읽는 책이었다. 창밖으로 여름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버스에선 미묘하게 쾌적한 에어컨이 나오고, 스쳐가는 풍경 사이에는 가로수며 정원수의 신록이 책갈피처럼 끼어 있다. 그 사이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여름의 뜨거운 햇빛도 왠지 봄볕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우선 다정한 책이다. 저자가 청두에서 한 달간 작은 아파트를 빌려 살면서 여행자로서 겪은 청두에 대해 말하는데, 항상 청두는 다정한 도시이고, 청두 사람들은 중국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보다도 다정했다고 말하곤 한다. 여러 번 반복되는 그 다정함이 책에도 묻어 있어서인지 저자의 말투도 다정하고, 사진의 색감까지도 다정했다(물론 전자책 리더기는 모든 사진을 흑백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 부분은 휴대폰으로 보았다. 나중에 종이책을 꼭 사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계기였다). 

 

청두의 음식, 청두의 볼거리와 청두 근교의 볼거리, 청두 사람들, 청두에서 마신 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 뒤에 붙어 있는 여행 팁이며 들러보면 좋을 명소와 음식점들의 교통정보까지도 에세이의 한 부분처럼 잘 어울려 있다. 

 

이것은 여행서다. 그러나 이 여행서는 여행을 갈 때 들고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행을 가기 전에, 그것도 일 년이나 오 년쯤 전에 읽어봐야 하는 여행서다. 이 책에서 여행자는 청두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고, 청두에서 글씨를 배우고, 소개받은 사람의 다실에 놀러 가 차 이야기를 잔뜩 하기도 하고, 차 시장과 차 산지에도 놀러 간다. 이런 경험은 숙련된 중국어 화자만이 가능한 것이어서, 그리고 한 달 이상 한 여행지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어서, 여행을 가서 그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의 결을 반이라도 느끼려면 무엇보다 중국어부터 공부해야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언젠가, 를 기약하는 여행자를 위한 책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어야지. 나도 언젠가는 저 곳에서, 단순히 며칠 머물며 관광지만 둘러보다 갈 외지인이 아닌 짧은 기간이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적극적인 여행자가 되어 살아보아야지, 그런 다짐을 하게 한다. 실제로, 저자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청두 근교 여행 이야기며 청두 내에서 차 시장 등을 돌아다니는 이야기애는, 현지인과 대화하고 가이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이라는 중국어 실력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이 책은 좋은 여행 에세이기 때문에, 여행을 가고 싶은 욕구와 중국어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보다는 여행의 즐거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읽다 보면 내가 직접 그 자리에 가본 듯, 청두의 어느 시끄러운 밥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공원의 찻집에서 다탁 위로 나뭇잎이 한 잎, 사뿐히 내려앉는 걸 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다. 한 달짜리 여행이어서일까, 여행 일정은 빡빡하지 않고, 하루를 몽땅 써서 다원을 방문하는가 하면 아름다운 두보초당은 몇 번이나 방문하기도 하고, 일반적인 관광객이라면 가 보지 못할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청두의 밤샘 영업 서점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시끄러운 거리의 한가운데, 마법처럼 조용한 서점이 나타나고, 점원까지도 접객보다는 책읽기에 골몰한 가운데, 여행자는 조용히 들어와 자동 판매기에서 차나 커피를 골라 마시고, 책을 골라 자리에 앉아 읽어나간다. 넓은 공간에는 저마다 책장을 넘기는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온다. 

 

서점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천국이 눈앞에 잠깐 펼쳐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물론 내가 중국어를 전혀 못한다는 슬픔 속에서 그 천국은 내 눈물에 녹아 사그라지고 말았지만. 그렇게 밤샘 영업을 하는 서점들이 많고, 청두 사람들은 중국 전역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내 안에 중국어 공부의 욕구가 치솟으면서 단번에 청두가 나의 제1 중국 여행지로 등극했다. 청두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좋아하는 서점에서 차 한 잔과 함께(중국 최고 차의 산지라는 청두에서 자판기 커피 대용으로 차를 주문하면 대체 어떤 차를 내줄지 너무나 궁금하다) 재미있어 보이는 소설 한 권 정도는 편안하게 읽고 싶다. (물론 나는 중국보다는 대만을 더 좋아하고, 배우고 있는 것도 보통화가 아니라 번체를 쓰는 민난어이기 때문에... 그 서점에 번체 책도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 전에 내 중국어가 독해 가능 레벨에 오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언젠가, 를 기약하는 여행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현지 친구가 여럿 있고, 현지어로 막힘 없이 소통이 가능할 때, 또 현지 문화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있을 때, 그리하여 정말 "한 달 살기"를 위해서 현지에 갈 수 있을 때 여행자의 여행은 얼마나 풍요로워지는지를 이 책은 말한다. 아무 날, 정해진 일정이 없을 때 아무 것이나 하더라도 그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 여행. 그런 여행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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