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스토리 4>가 개봉한다고, 그 김에 정주행하라는 것인지 넷플릭스에서 <토이 스토리> 1편부터 3편까지를 주루룩 올려놓았다. 아직 논문 수정이 까마득하게 남았지만 어제는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하얗게 익은 뇌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머리가 아파서, 어차피 하루 쉬는 김에 자기 전에 <토이 스토리>를 봤다.
<토이 스토리 3>을 극장에서 보았는데, 3편의 마지막 장면으로 나오는 하늘과 1편의 첫 장면으로 나오는 앤디 방의 벽지가 일치하면서 시리즈의 미장센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고 실제로 그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났었다. <토이 스토리>의 첫 장면을 보는데 3편의 마지막 장면이 기억나면서 두 영화가 잠깐 겹쳐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만 질릴 때까지 물어뜯는 아이였다. 내 유년기는 얼마 안 되는 몇 편의 영화와, 다른 아이들의 유년기에 비해서는 분명히 많지만 내가 독서에 할애한 시간을 생각했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적은 몇 권의 책으로 압축된다. 지금 와서는 그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이상하게도 책은 그나마 잘 기억나는 편이고, 영화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만화방에서는 <도라에몽>을 빌려다가 똑같은 부분을 읽으며 웃고 또 웃었다. 동네 비디오 가게는 태권도 도장 건너편에 있어서 엄마가 돈을 미리 맡겨두고 태권도 수업이 끝나면 내가 비디오를 골라오게 했는데, <마리와 돌고래>(제목이 정확하지 않다) 영화와 <곰돌이 푸> 시리즈만 주구장창 봤다. 곰돌이 푸를 백 번은 넘게 봤을 텐데 늘 그렇게 재미있었다. 디즈니의 다른 공주 영화도 여러 편 보기는 했을 텐데 뭘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고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디즈니 로고 화면만 선명하게 기억난다. 당시까지는 나오는 영화가 모두 2D여서 파란 바탕에 하얀 성 위로 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반짝, 빛나면서 끝났다. 디즈니 공주 영화에 빠진 건 오히려 고등학교 때여서, PMP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심히 <미녀와 야수>를 보며 그 애니메이션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 나왔다는 것에 감탄했다. <미녀와 야수>의 손님 접대 장면에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접시와 잔의 무늬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예쁘다. 벨의 드레스도, 성의 실내 장식도, 모든 집기들의 생김새도 그렇다.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느냐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한창 보던 시절의 나는 <토이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그런다. 이 영화를 분명히 한 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이번에 이 영화를 보면서도 기억나는 장면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시드의 방에서 우디와 버즈가 당하는 수난이라든가, 첫 장면에서 앤디의 생일 선물을 염탐하려고 장난감 병정들이 첩보물을 찍는 장면이라든가. 첩보 장면에서는 <해리 포터>에서 삼총사가 불사조 기사단의 회의를 도청하려고 '늘어나는 귀'를 방문에 던지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쿡 웃었다. <해리 포터> 역시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던 내 소울메이트다.
<토이 스토리>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엄청나게 많아서, 나는 늘 내가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이 시리즈만큼은, 다른 디즈니 영화들에게처럼 별 감정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겨울왕국>을 사랑하고, <라푼젤>도 사랑한다. 최근에 나온 작품이 아니라도, <미녀와 야수>의 모든 장면과 노래를 외우고 있고, 공주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안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인사이드 아웃>도 좋아한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물론이고 <주먹왕 랄프> 시리즈도 좋아한다. 남자가 주인공인 작품은 싫어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다섯 번쯤 봤던 <빅 히어로 6>가 있다. 내가 성인이 된 후에 나온 것 말고 성인이 되기 전에 봤던 작품들을 꼽아야 한다면,드림웍스 작품들이 있다. <슈렉> 시리즈를 (결코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극장에서 볼 만큼은 좋아했다. <드래곤 길들이기>도 좋아한다. 더 어릴 때 몰입했던 작품으로는 <몬스터 주식회사>와 <마다가스카르>와 <벅스 라이프>가 있다. 지금 와서는 영화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벅스 라이프>를 봤던 횟수가 <곰돌이 푸>와 맞먹을 것이다. 왜 이런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느냐면, 내가 반드시 공주가 나오는 이야기나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만을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여성 캐릭터와 남성 캐릭터에게 주어진 조형과 성격이 눈에 띄게 다른 것을 알고 있어도, 그것이 성별이분법을 강화하는 방향임을 비판하기는 해도 <드래곤 길들이기> 영화 자체는 좋아한다.
<토이 스토리>는 좋은 영화였다. 재미있고, 흥미를 당기고, 감동이 있고, 어린아이들을 몰입하게 할 액션 씬이 있다. 무엇보다도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영화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이 점을 지적했기에, 그 말에 흥미가 당겨 <토이 스토리>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어른이 되어 보는 <토이 스토리>는 정말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좋은 영화였다. 우디가 1인자 자리를 뺏길까 봐 버즈를 견제하고 괴롭히는 모든 과정들과 자신이 진짜 우주에서 온 전사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장난감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어 현실과 대립하는 버즈가 결국 자신의 자리를 긍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아름다웠다. 눈 세 개 달린 외계인들의 비중이 적어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동은 피상적인 것이었다. "그래야 하니까" 응당 느끼는 감동과 아름다움이었다. 가슴이 미어지거나, 캐릭터들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거나, 영화가 좋아서 눈물이 나거나, 그런 과정들은 없었다. 그냥 잘 짜여진 서사라서, 좋은 이야기라서 느끼는 감동뿐. 이 이야기는 순수하게 남자아이의 이야기였고, 남자아이의 장난감들 이야기였다. 이 서사에는 이 이야기에는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그래서 감동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고,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고작해야 웰메이드 영화에 줄 수 있는 찬사뿐이다.
아마도 이런 느낌을 갖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상자 속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남자아이들의 장난감 이야기다. 내가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이야기. 모험적인 남자애 이야기가 아니라 모험적인 '남자애의 장난감들'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해리 포터>시리즈와 <룬의 아이들> 시리즈를 수백 번 되풀이해 읽으며 그 이야기에 몰입했던 것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사회에서 인정한 보편 인간'이기 때문이다. 여자아이의 성장은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남자아이가 세계의 중심이고 남자아이가 세계를 모험하고 바꾸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자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남자아이의 자리에 자신을 대입한다. 어차피 '소녀 소설'로 분류되지 않는 이야기들은 모두 남성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성의 자리에서 남성성을 쉽게 지울 수 있다. 그러도록 길러졌으니까. 그러나 남자아이들의 장난감이라면 어떤가.
남자아이의 장난감과 그 장난감들 이야기는 남자아이들의 것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모임에서, 우리의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만난 남자 짝꿍과의 사이에 금을 그으며 금을 넘어오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았듯이, 우리가 노는 방식과 남자애들이 노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남자애들의 방식을 배제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가 시드의 동생 한나가 인형들과 노는 이야기와 같았는가? 그 역시 잘 모르겠다. 우리의 인형들은 종종 옷이 다 벗겨지고, 우리의 손으로 목이 꺾이거나 다리가 꺾였다. 긴 금발 머리카락들이 손톱만한 빗으로 조심스럽게 빗겨지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섬세하게 땋아지는 날도 있었지만, 미용실 놀이를 한답시고 긴 머리를 엉망으로 잘라 컷트도 단발도 아닌 몽실언니 스타일로 만들어 놓기도 여러 번이었다. 결국 우리의 놀이는 다 같은 것이었다. 그림책에서 유난히 좋아하는 등장 인물의 아름다운 얼굴에 낙서를 하거나 머리카락을 무지개색으로 칠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경찰 놀이를 하거나 스타워즈를 보는 남자애들에게서는 멀어졌는가. 사실 이것은 나의 편견 가득하고 치졸한 읽기 방식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앤디의 동생 몰리의 침대는 '감옥'이 되었고 몰리는 감옥에 갇힌 악당 감자머리를 고문하는 간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지 않았는가. 우리 다음 세대는 다를 수도, 어쩌면 우리 세대도 달랐으나 내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그렇다는, 이야기다.